한국일보

‘칼로 무 베기?’

2015-09-28 (월)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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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원한다. 불행을 바라는 이는 없다. 사람은 모름지기 행복의 첩경을 가정에서 찾아야 한다. 가정은 한 지붕 밑에서 자고 깨고 먹고 마시면서 밤낮으로 고락을 함께 하는 곳이다. 혈연적으로 이뤄진 사회생활의 기본단위가 바로 가정이다. 그래서 가정이 행복하면 그 가족도 행복하다. 아무리 환경이 좋아도 가정이 불행하면 그 가족 역시 불행할 수밖에 없다. 가정은 온갖 행복의 근원, 곧 행복의 요람이기 때문이다.

한 가정의 구성은 일남일녀의 결혼으로 시작된다. 결혼은 인륜지대사라고 한다.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할 큰 도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독신주의나 동성애자들을 탓하는 것은 아니다.

부부는 천생연분이라 한다. 하늘에서 맺어준 인연이란 의미다. 하늘에서 미리 정해준 배필은 천생배필이다. 나무랄 데 없이 신통히 꼭 알맞은 한 쌍의 부부를 일컫는 말이다. 부부는 한 몸이라는 부부일신이란 말도 있다. 그래서 부부는 헤어지기 전까지는 영원한 동지요, 길잡이인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이폴리트 아돌프 텐(Hippolyte Adolphe Taine)은 부부관계를 “3주 동안 서로 관찰하고 3개월 동안 서로 사랑하고 3년 동안 서로 싸우고 30년 동안 서로 용서하며 산다”고 정의했다. 2005년도에 세계 최장 행복한 커플로 기네스북에 올랐던 영국인 퍼시 애로스미스(105)씨와 그의 부인 플로렌스(100) 씨는 80년 금슬의 행복 비법은 ‘미안해(Sorry)’ ‘그래, 여보(Yes, dear)’라는 한 마디였다고. 이처럼 부부가 평생 함께하는 데는 지켜야할 것도 많지만 서로 양보하면서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게다.

부부란 젊은 시절엔 연인, 중년에는 친구, 노년에는 간호사가 된다는 말이 있다. 미운 정 고은 정으로 부부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바로 행복한 삶이란 의미다. 아무리 출세한 남편도 아내가 없으면 ‘낙동강 오리알’이고 아무리 예쁘고 잘난 척 하는 아내도 남편이 없으면 ‘개밥의 도토리’란 말도 그래서 생긴 게 아닐까 싶다.
흔히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 한다. 부부사이의 싸움은 오래가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그건 물의 입장이다. 칼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칼에 잘린 물은 금방 원위치 한다. 하지만 물에 자주 닿는 칼은 결국 녹이 슬고 만다. 부부싸움의 상처는 생각보다 오래 간다는 것이다. 그러니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가슴에 못을 박는 아픈 얘기는 입 밖으로 내보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요즘은 부부싸움이 ‘칼로 물 베기’가 아니라 ‘칼로 무 베기’가 되어 가는 세상이다. 부부싸움으로 인해 심각하게는 가정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부가 싸울 때도 물이 담긴 그릇의 바닥까지 칼로 긁어서는 안 된다. 긁힌 그릇이 깨지면 ‘칼로 물 베기’가 ‘깨진 쪽박에 엎어진 물’이 되기 때문이다.

부부싸움 후에는 꼭 각방을 쓰는 부부들이 의외로 많이 있다. 심하게 싸운 뒤 하루 이틀 정도 각방을 쓰는 것은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화를 가라앉히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이유다. 하지만 각방을 쓰는 일이 습관화되는 것은 문제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서로에게 무관심해져 대화가 줄어든다, 싸웠다고 각방을 쓰면 부부 관계가 더 멀어지게 된다는 얘기다. 부부라면 ‘각방’이 아니라 ‘한방’을 써야 하는 이유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다. 하지만 형제나 친구들과의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부부싸움 후에 풀어지는 방법이 다른 관계들과는 달라서다. ‘부부싸움은 잠자면 풀린다’는 속담에서 보듯이 부부싸움이 잘 풀리는 비밀은 성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로 그쳐야 한다. ‘칼로 무 베기’가 돼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니 싸웠더라도 ‘각방’을 쓸 것이 아니라 ‘한 침대’를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가정의 행복을 지키는 슬기로운 지혜(?)가 아닌가 싶다.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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