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부딪침이 승리의 비결

2015-09-21 (월) 최효섭 (아동문학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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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 시즌이 시작되었다. 지구상의 운동 경기 가운데 아마도 가장 재미있는 경기일 것이다. 풋볼의 볼거리는 단연 태클이다. 선수들은 사슴의 싸움처럼 정면으로 부딪쳐 간다. 수비도 태클, 공격도 태클, 승리의 비결은 부딪침에 있다.

인생도 부딪쳐 봐야 안다. 몸으로 부딪치지 않고 머릿속만으로 계산하는 것은 실패의 시작이다. 바둑에서도 속기에 실수가 많다. 깊게 수를 읽는다는 것은 끝까지 부딪치는 진지함이 있는 것이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소련의 솔제니친은 감시와 억압과 고통 속에서 26만 단어에 달하는 대작 ‘수용도 열도’를 썼다. 6백만 명의 정치범이 갇혀있는 소련 수용소의 내막을 고발하는 이 소설을 위하여 227명의 증언을 수집해야만 했다.


이런 노력을 평온한 환경에서 한 것이 아니다. 소설 내용은 스탈린뿐이 아니라 당시 신성불가침이라는 레닌까지 규탄하는 것이므로 목숨을 걸지 않고는 시작도 못할 작품이었다.

그러나 그는 “내가 암살당하면 비밀경찰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꼭 출판해 달라.”는 유언을 측근에게 늘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기어이 해냈다. 그의 책은 햇빛을 보고 소련은 그를 추방하였다.

이 작은 인간 하나를 거대한 전체주의 국가가 죽이지도 못하고 수용소에 보내지도 못한 사실을 보고 인류는 역사의 준엄한 발걸음을 되새겼던 것이다. 작은 돌멩이가 부딪쳐 큰 유리창을 깬 것이다.

한 인간에 대한 평가는 중간에 하기가 매우 어렵다. 잘 부딪쳐 빛난 자국을 남기다가도 마지막에 죽을 쑤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은 죽는 순간에 “프랑스.. 군대.. 조세핀..”하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조세핀은 이혼한 부인의 이름이다. 그가 평소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던 세 개의 낱말이 운명하는 입술에서 새어나온 것이다. 예수의 최후의 말은 “다 이루었다!”는 고백이었다. 나폴레온의 말에는 ‘이대로 눈 감기 아쉬운’ 여운이 처량하게 감돌고 있다. 예수의 최후의 말에서는 끝까지 부딪치고 후회하지 않는 승리의 맺음을 느낀다.

시인 괴테는 “창문을 열어다오. 빛을.. 빛을..”하며 숨을 거두었다. 베토벤은 “친구여 박수를. 희극은 끝났다.”하고 말하며 세상을 떠났다. 두 사람 다 열심히 산 천재들이었으나 괴테의 최후에는 어둠을 헤매는 방황이 깃들였고 베토벤의 말에는 허무가 스며있다. 행복하고 만족하며 생을 마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나의 결론은 “정열적으로 부딪치며 산 자가 그래도 만족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거부(rejection) 속에서 살아간다. 홍수 태풍 가뭄 같은 자연의 거부도 있고, 파면 실업 불합격 파산 등 직업생활의 거부도 체험한다. 사랑 실패 결혼 파탄 사기 배신 등 인간관계에서의 거부도 맛보며, 참기 힘든 병에 시달리며 여러 해를 병마와 싸우기도 한다. 이런 거부에 직면할 때 어떤 이는 기운을 잃고 영영 주저앉아 버린다.

그러나 어떤 이는 다시 일어난다. 근본적으로 재기의 힘은 거부로 말미암아 상실했던 자신에 대한 평가를 회복하려는 정신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따라서 비판이나 냉소, 파괴행위나 자살 등은 자신에 대한 가치를 낮게 평가한 결과이며, 자기를 한 인간으로서(종교적으로는 신의 피조물로서) 높이 평가할 때는 거부를 극북하고 재기의 의욕을 갖게 된다.

멀리서 보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던 일도 실제로 부딪쳐 보면 가능하다는 사실을 많이 경험한다. 토마스 에디슨은 “어려운 일과 불가능한 일의 차이에서, 불가능하다는 일이 조금 더 시간이 걸릴 뿐이다.”고 하였다. 좋은 목재는 쉽게 자란 나무가 아니다. 추위와 더위, 비바람과 눈보라에 오래 동안 시달리고 부딪쳐 단단해진 것이다. 용기를 잃지 말고 끝까지 부딪쳐 보자.

<최효섭 (아동문학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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