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딴청계 진상필의원!’

2015-09-21 (월)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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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정치드라마 ‘어셈블리(Assemble)’를 흥미진진하게 봤다.
이 드라마는 한국국회를 다룬 이야기다. 정현민 작가가 국회보좌관 출신답게 국회를 섬세하고 리얼하게 표현했다. 국회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한국 정치의 민낯도 그대로 보여주었다. 300명의 국회의원이 중요하지만 제대로 된 1명의 국회의원이 더 중요함도 꼬집었다.

이 드라마의 주요내용은 가상의 국회의원인 ‘딴청계 진상필 의원’의 좌충우돌 활약상이다. 그는 용접공 출신 노조위원장이다. 어느 날 갑자기 전략공천을 받아 여당의 국회의원이 된다.

정치가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는 “정치! 그거 말이에요. 제대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첫 질문을 통해 자신이 국회의원으로 가고자 하는 길을 암시한다. 그는 고군분투한다.


특권과 기득권에 찌들어 있는 현실정치를 기분 좋게 비튼다. 가식도 거침도 없다. 마음속에 담고 있는 말들을 그대로 쏟아 붓는다. 기성 정치의 구태에 적극 맞선다. 당과 계파의 이익만 추구하는 당내의 정치행태엔 인정사정없다. 날선 비판을 마다하지 않는다. 청와대의 거수기로 전략한 당에 소신을 굽히지 않고 정면 대응한다.

총리임명 동의안을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도덕성이 결여된 총리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저지하기 위해 무려 25시간에 걸쳐 의사진행 발언을 한다. 그런 부적격 고위공직자 임명저지를 위한 불굴의 의지와 초인적인 투지를 보이는 장면은 쓸쓸하고 구슬플 정도였다. 총리후보자와 동료의원들을 향해서 “꼼수로 잘 먹고 잘 사는 게 열심히 사는 거냐?”며 묵직한 한방도 날린다.

국민의 머슴이기를 자처하는 진상필. 그는 어린아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시장마저 난색을 표명한 다리를 직접 만든다. 환경과 지역주민을 위해 무모한 신항만 공사는 결사적으로 반대한다. 총선불출마의 대가로 제시받은 공기업 기관장 자리도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당내 최고실세인 사무총장에게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맞서, 오히려 그를 올바른 정치인으로 이끌기도 한다.

늘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며 봉사한다. 그러니 권모술수와 사리사욕이 없다. 계파에 휩싸이지 않으니 자칭 ‘딴청계’다. 그에겐 오로지 국민을 위한 정치, 국민이 주인 되는 정치를 하기 위한 열망만 있을 뿐이다. 이 드라마는 진상필이 의원직을 사퇴하고 자신의 수석보좌관을 국회의원으로 탄생시키면서 끝을 맺은다.

이 드라마는 한국정치가 국민은 물론 해외한인들에게도 희망이 되지 못하는 시대에 정치의 본질과 좋은 리더의 조건 그리고 참된 정치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한낮 픽션에 불과할 뿐이라 안타까움이 남는다. 한국국회에서 진상필같은 국회의원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으니 말이다.

지난주 뉴욕총영사관에 대한 국감이 있었다. 한국에서 8명의 여야 국회의원이 왔다. 그들은 그저 한인사회 문제만 나열하고 해결하라고만 주문했다. 송곳질의는 하지 않았다. 아니 준비가 미흡해 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맥 빠지게 끝났다. 결국 ‘봐주기 국감’이란 인상만 준 셈이다. 이번에도 ‘진상필’같은 국회의원은 없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물론,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번 국감에서 뉴욕총영사가 한인사회에 대한 이해력 부족이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뉴욕총영사는 한인관련 질의에 명확한 답을 하지 못하거나 전혀 엉뚱한 답변을 했다고 한다. 참으로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뉴욕총영사관의 국감 부실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평가다. ‘봐주기 국감’은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다. 국세낭비일 뿐이다. 때문에 국감을 제대로 하려면 다음에는 재외국민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국회의원들이 와야 할 것이다.

뉴욕총영사는 한인사회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한인사회에는 한인 위에 군림하는 권위적인 모습이 아닌 늘 낮은 자세로 한인을 제대로 섬길 줄 아는 공관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딴청계 진상필의원’ 같은 한국정치인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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