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과’

2015-09-1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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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목사)

“사과 한 알로 파리를 정복할 것이다.” 후기인상파의 거장 폴 세잔(Paul Cezanne, 1839-1906)의 말이다. 이 말 한 마디에 세잔의 치열한 장인정신이 함축되었다. 긴 시련과 고독의 과정 속에서 얻어진 몰입의 신비가 이 말 한마디에 묻어난다.

19세기의 파리는 미술을 대표하는 세계적 도시였다. 예술 공부하려는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파리로 모여 들던 시대다. “파리를 정복하겠다.”는 세잔의 말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가 되겠다는 선언문과 같다.


친구들은 세계적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은 세잔에게 파리로 나오라고 종용했다. 하지만 세잔은 친구들의 말에 흔들리지 않았다. 세잔은 화려한 도시 파리보다는, 이름 없는 자신의 고향 프로방스에서 세계를 놀라게 하는 화가가 되고 싶었다.

무명의 로컬리스트 세잔은 평생 프로방스를 떠나지 않았다. 세잔은 평생 한적한 고향에 머무르며 한 가지 그림에 깊이 침잠했다. 외로움과 고독은 자신만의 예술을 다듬는 친구요 벗이었다. 그가 쉬지 않고 그리고 또 그린 그림은 사과 정물화다.

세계를 놀라게 하는 세잔의 위대한 명성은 사과 정물화로부터 왔다. 그림을 그린 40년 동안 하루도 사과 그림을 빠트린 적은 없었다. 세잔은 수백 수천 번의 사과 정물화 습작을 통해서 구도와 형상을 단순화한 자신만의 화풍을 개척해 나갔다. 전통 화법인 원근법을 버리고 비움과 몰입의 미학을 살린 그의 독특한 추상화법이 여기서 태동되었다.

세잔의 위대한 장인정신은 끊임없는 습작의 반복으로 무르익었다. 마음에 드는 사과 그림 하나 얻으려고 무수한 밤을 지새우며 몸부림 쳤다. 그냥 평범한 사과가 아니라, 따뜻하면서 강열한 존재의 힘을 품어내는 특별한 사과를 세잔은 그리고 싶었다.

150번을 시도한 결과 마음에 드는 작품 하나를 얻었다. 그것이 ‘사과가 있는 정물화‘다.

전 존재를 걸고 자신을 투신할 수 있는 몰입정신만 살아 있으면, 그 사람은 위대하다. 미래가 있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장인’이라고 부른다. “진정한 장인이 되려면 눈이 멀어야 한다.”

터키가 낳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르한 파묵(Orhan Pamuk)의 말이다. 세잔은 사과 하나에 눈이 먼 사람이었다. 사과 정물화에 관한 한,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따라올 자가 없는 최고의 이해와 인식을 가졌다.

유대 열성당원이며 변방의 로컬리스트였던, 사도 바울이 예수의 제자 그룹 중에서 가장 탁월한 리더로 자리 매김한 이유는 무엇인가. 탁월한 몰입력 때문이다. 다메섹 도상에서 개종한 이후로, 바울의 유일한 목표는 ‘오직 예수’였다. 바울의 탁월한 ‘예수 몰입력’은 작은 이스라엘을 뛰어넘어 최강대국 로마를 변화시킬 만큼 위력이 있었다. 당신은 리더인가. 당신이 몰입할 사과는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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