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빈자들의 성인’ 프란치스코

2015-09-1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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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2,000년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가톨릭 교황청은 막강한 권력에다 감히 누구도 쳐다보기 어려울 만큼 높은 자리로 인식돼 왔다. 그런 교황에게 ‘빈자들의 성인’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었다. 그러나 21세기에 빈자들의 성인이라 불리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의 교황이 탄생, 신체적으로나 정신적, 경제적으로 고통받고 있는 전 세계의 수많은 약자들의 뜨거운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프란치스코’는 바로 사랑과 청빈을 합친 영성을 실천한 성 프란치스코의 정신이 담긴 이름으로 실제로 이를 실천해야 교계가 살 수 있다는 믿음 하에 출발된 이름이다. 즉 성 프란치스코와 교황 프란치스코가 강조하는 것은 이름 그대로 본질이 사랑과 평화, 그리고 청빈이다.


취임후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금까지 어느 나라를 방문할 때 바티칸의 관저같이 화려한 숙소 대신 방 한 칸짜리 초라한 숙소에 머물고 간단한 음식으로 식사를 대신하며 저렴한 승용차를 이용하고 경호원을 최소화하기를 요구하는 것도 그런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높다란 종교권력의 성이 아니라 아시시의 뒤를 따라 낮은 데로 임하려고 하는 그의 소박하고 검소함에서 나오는 믿음의 산물이다. 거상의 아들인 성 프란치스코가 청년이 되면서 마음이 변화돼 집안의 귀중한 물건들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자 이를 보고 심려한 그의 아버지가 아들의 상속권을 박탈해달라고 아시시 시청에 제소한다. 그러자 성 프란치스코는 시청 정문 앞에서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을 몽땅 벗어 아버지에게 돌려주었다.

육신의 아버지를 떠나 영적인 아버지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일종의 자기 결단을 내보인 것이다. 이때부터 그는 무소유와 사랑을 온몸으로 구현하며 빈자와 소외된 자들을 위해 살았다. 44세에 죽을 때도 남들이 흔히 하는 허례허식을 떠나 땅바닥에서 임종할 정도로 그는 한없이 낮은 데로 임하기를 소원했다.

부와 권력을 추구하며 자기만을 위해서 살려고 하는 이 세상 많은 사람들에게 생전에 어떻게 살다 가야하는 가를 몸소 보여주고 떠난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등장 할 때마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그토록 열렬하게 환영하는 이유는 높은 신분에도 불구하고 낮아지기를 청하는 그의 진솔한 모습에 감동하며 그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특히 경외하고 사랑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는 22일부터 나흘간 미국을 방문한다는 소식이 나오자 벌써부터 미국이 떠들썩 야단이다. 특히 그의 이번 방문에 수많은 미국내 불체자와 노숙자, 가난한 사람들의 기대가 매우 크다고 한다.

빈자들의 친구 되기를 기꺼이 하는 교황인지라 이번 방문에서 교황은 워싱턴의 노숙자들과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을 만나 함께 식사하면서 이들을 위로할 예정이라고 하니 이번 교황의 방문이 이들에게 각별할 수밖에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또 다른 종교적 화두 하면 ‘관용’이다. 그는 인종, 문화, 종교, 빈부의 대립으로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을 찾아가 위로하고 눈물을 닦아주는 성직자로 유명하다. 그런 교황이 이번 방미에서 또 어떤 파격적 관용을 보여줄지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진다.

물질문명의 발달로 인간의 가치가 점차 훼손되고 있는 이 시대, 교황의 이번 방문으로 갈수록 실추되는 인간의 존엄성과 양심, 그리고 도덕성이 회복되고 주위의 어려운 사람을 돌아보고 배려 할 수 있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고 그의 방문을 나 역시 기다린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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