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입사원의 질문

2015-09-12 (토)
크게 작게
이우황 <회사원>

우리 부서에 잘 생기고 키도 큰 명문대 출신의 신입사원이 들어왔다. 나보다 40년이나 젊고 나의 막내아들보다도 어린 친구다. 소위 말하는 아이비리그 대학은 아니지만 아리비리그 대학 못지않은 대학 출신이다. 나는 그가 부럽기까지 했다.

신입사원 환영회식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우리 집 근처에 살아 내차로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이런저런 이야기하는 도중 나에게 인생에서 제일 후회하는 일이 무엇인가고 물었다. 순간적으로 잠깐 나의 지나간 시절을 회상해 보았다. 나는 나의 어릴 적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공부를 너무 안 한 게 후회라면 후회라고 말했다.


그에게 그렇게 대답하기는 했어도 사실로 보면 나는 지금까지 후회하며 살아온 적이 거의 없다. 어떻게 보면 후회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뭐하나 딱 부러지게 잘 하는 것이 없는 나는 오로지 새로 맞이하는 날들을 잘 살아가야한다는 도전심으로 하루를 맞고 하루를 보내곤 했다.

그런데 나의 과거를 돌아보니 심히 부끄럽고 얼굴을 들지 못할 만큼 창피했던 일이 기억났다. 서울에서 재수까지 하고도 원하는 대학시험에 떨어진 일이다. 나의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 맞았던 거다.

그 당시 아버지와 나는 시각차가 좀 있었다. 나는 서울 명문대를 나오면 성공은 보증수표라는 생각에 죽어도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싶은 욕심이 강해서 아버지에게 서울에서 공부시킬 만큼 충분히 가치가 있는 아들이라고 설득을 계속하며 공부를 잘하고 똑똑한 것처럼 과장되게 거드름을 피웠다.

그 때 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이 사회 걱정 나라 걱정은 똑똑한 많은 사람들이 할 것이니까 쓸데없는 잡생각 말고, 네 앞가림만 잘 하라고 하셨다. 대학은 집 가까운데 가면 되고, 모든 것은 자기가 하기 나름이지 이곳에서 못하는 놈이 서울 간다고 잘 할까 하셨다.

나는 당당하게 합격하여 멋진 모습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고 낙방하고 말았다. 그 낙방한 원인이 어릴 때 공부를 안 해 기초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부모님께서 왜 나에게 공부를 열심히 시키지 않았을까? 살짝 원망심이 들기도 했었다.

나는 원불교에 다닌 지 30년이 넘었다. 원불교의 가르침으로 정신을 차려 이 상황을 다시 생각해 본다. 해로움에서 오히려 은혜가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서울에서의 대입시험 낙방은 오히려 나에게는 큰 은혜였다는 생각이 든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치열한 경쟁에서 벗어나 마음 편안하게 대학생활을 하고, 나의 아내도 그곳에서 만날 수 있었으며, 학벌을 보충하기 위해 유학을 결심하고 결국 미국에 와서 30년 이상을 큰 과실 없이 살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부모님으로 부터 받은 은혜가 한량없는데 원망심이 나다니…. 대입시험 떨어진 것이 어찌 부모 책임이며, 어찌 어릴 때 공부 안하고 놀기만 한 때문인가? 공부 안 한 대신 그때 배운 점은 없었는가? 이생에서 못 이룬 것을 전생 탓으로 돌릴 것인가?

자신이 짓고 자신이 받는다는 진리를 깨치면 남을 원망할 일이 없다. 오직 감사할 따름이다. 미국에 와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주권을 받은 후 첫 회사에 입사한 것도 감사한 일이고 그리고 지금까지 20년 넘게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 일할 수 있는 것도 감사할 따름이다. 감사의 씨앗은 또 다른 감사를 낳는다.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보면 어떻게 보은할까라는 마음이 생긴다. 감사와 보은이 충만한 세상은 우리 모두가 바라는 세상이 아닐까?

우리 회사 신입사원의 질문은 결국 나를 감사와 보은의 세계로 인도하여 주었고 그런 그가 참 감사하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