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2015-09-12 (토)
크게 작게
민다미<갤러리 부관장>

“엄마 ,Look at the sky, the fullmoon is falling to us” 다음 전시를 위해 작품을 걸고 갤러리를 늦게 나선 어느 저녁, 아이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가 일하는 박물관을 제집인냥 문턱 닳도록 드나들던 아이가 방학을 맞아 더 여러 날을 그곳에서 보내던 때이다. 방학동안 수영하고, 운동하고 여행다니며 놀기만 해서 곧 새 학년이 될 아이가 걱정이 되는 엄마의 노파심이 갑자기 들어 이럴 때가 아니다며 벼락치기 공부를 하루 종일 시켰더랬다.


그랬으니, 아이머리에서 쥐라도 났을터인데, 밤늦게 갤러리를 나선 아이가 얼마나 신났는지 콧노래를 연신 불러대더니, 하늘을 바라보고 툭 내뱉은 말이다. 아이의 말을 듣고, 하늘을 쳐다보며 추억에 젖어 있는 내게 아이는 서툰 한국말로 “하늘에 있는 동그란 달이 우리에게 쏟아지고 있어요.” 라고 다시 말했다. 그랬다. 정말 보름달이 우리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하늘을 쳐다본 지 한참이다. 뜨거운 여름날 플로리다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공원을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돌아다니며, 따갑게 내리쬐던 하늘을 바라보며 ‘비라도 내릴 것이지’ 하며 원망섞인 눈으로 바라보던 것이 요 근래에 바라본 하늘의 전부였다.
얼마 전 안과에서 시력검사 후, 성장하는 내내 시력이 더 나빠질거라는 말을 들은 터라 좋아하는 책도 영화도 차에서는 금지령을 내리고, ‘ 초록빛 숲을 바라보라, 파아란 하늘을 좀 보라’며 연신 잔소리를 해댔더니, 이젠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 속에서 사슴 가족도 발견하고, 나무를 오르락내리락거리는 다람쥐도, 방귀의 위험을 알리며 스컹크의 목격담도 엄마에게 알려주다보니 대화가 훨씬 풍성해지고, 깊어진 것 같다. 그래, 하늘을 자주 봤어야 했다.

나도 아이도.생각해보니, 하늘에 대한 기억이 많다. 정년퇴직 후 고향마을로 돌아가, 툇마루가 있는 옛날집에서 정원 손질에 작은 텃밭을 기르고, 장독가득 된장, 고추장, 막장, 효소등을 담아 먹으며 노년을 보내시 부모님을 방문했을 때, 평상에 누워 모깃불에 눈이 따가워 찔끔찔끔 바라보던 별빛 쏟아지는 그 하늘이 기억난다. 시골 생활이 처음인 내게 쏟아지는 별빛은 도시의 휘황찬란한 고층빌딩과 네온사인의 화려한 불빛보다 훨씬 더 매력적이었다.

한국에서의 학창시절,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듯 야간자율학습을 할 때 , 새가 되어 날아가고 싶다며 올려다보던 그하늘도 푸르디 푸르렀음이 기억났다. 하늘을 자꾸 보니 좋은 추억들이 자꾸 떠오르고 아이와 엄마의 유년시절을 들려주게 된다. 한국에서는 공해로 인해 시골에서만 볼 수 있는 별빛을 우리 이민자들은 맘만 먹으면 집 뒷뜰에서도 마주할 수 있는 별빛 아니던가?

분주한 이민생활이지만 가끔은 하던 일을 멈추고 하늘을 보자. 물질로는 살 수 없는 그 풍요로운 무언가가 하늘에 담겨져 우리에게 쏟아질 지도 모를 일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