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난민행렬과 희망의 불꽃

2015-09-09 (수)
크게 작게
여주영(주필)

1993년 뉴욕타임스에 게재된 한 장의 사진, 아프리카 수단의 비참한 실상이 들어있는 이 사진은 사진작가 케빈 카터가 ‘수단아이를 기다리는 게임’이라는 제하로 기아선상에서 죽어가는 한 흑인소녀와 이 소녀의 죽음을 기다리는 독수리의 형상을 촬영한 사진이다. 이 사진은 전 세계에 큰 충격을 던지면서 아프리카로 수많은 도움의 손길이 이어지게 했다.

얼마 전 터키 해변가에서 숨을 거둔 채 발견된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아일란 쿠르디의 가슴 아픈 사연도 전 세계인의 가슴을 울리면서 난민수용에 거부감을 보여 온 유럽 국가들의 꽁꽁 닫힌 문을 열게 하였다. 숨진 이 어린 아이의 슬픈 죽음은 갈 곳 없어 방황하며 절망에 빠져있는 수백 만 명의 난민들의 희망의 불꽃이 되어 주었다.


난민선을 타고 오다 죽은 어머니, 형과 떨어져 홀로 죽은 이 아기의 처절한 죽음이 세상에 알려지자 프랑스와 독일은 16만 명 규모의 난민 쿼터제에 합의, EU회원국이 할당 인원을 받아들이자는 내용을 제의하기에 이르렀다. 독일은 3만 1,000명, 프랑스 2만 4,000명 추가, 영국 2만 명, 스페인 1만 5,000명 등의 난민을 수용하기로 한 것이다.

당장 수용이 필요한 난민은 현재 20여 만 명, 물론 이들을 수용하기에는 막대한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 이들이 공식적으로 난민허가를 받아 국경을 합법적으로 넘기에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장애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동안 탈출을 위해 무작정 난민 브로커 차량에 몸을 싣고 가다 죽은 시체로 발견되는 일이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고속도로 상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브로커가 버리고 간 냉동트럭에서 핏물이 흘러내리면서 그 속에 50여구의 시신이 죽어있는 가하면, 트럭 짐칸에서 탈진하거나 숨진 어린이가 발견되는 사태도 생겨났다. 목숨을 건 난민들의 사투가 죽음의 행렬로 이어지고 있는, 지구촌 최악의 비참한 실상이다.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올해 유럽 땅을 밟은 난민은 30만 명, 지난해 지중해 난민은 21만 명, 이중 올해 2,500명이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바다에 수장됐다.

난민들의 탈출 동기는 대부분 전쟁과 내전, 기아, 인권탄압 등을 피하기 위함이다. 정치적 탄압과 가난을 면하기 위해 북한의 동족들이 중국으로 탈출하는 것이나 가난을 면하고자 멕시코 등지에서 미국을 찾는 것이 그런 예들이다. 시리아 난민들의 탈출행렬도 바로 IS의 만행을 피하고 국가적인 재난과 가난에서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자유와 복지의 나라로 죽음을 불사하고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난민 수 만 명이 처한 비극 앞에서 복음은 우리에게 가장 버림받은 이들의 이웃이 돼 구체적인 희망을 주라고 말한다”며 “전 세계의 모든 교구가 난민 한 가구씩 받아들이자고 행동에 나서 줄 것을 강조하고 있다.

앞으로 시리아에서 발생할 난민의 수는 약400만 명이나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재 유럽국가가 받아들인 난민의 수는 이중 1%밖에 안 되는 수치이다.

그렇다면 이들 난민들은 모두 어디로 갈 것인가. 이제 이들의 미래는 지구촌의 최대 관심사다. 그리고 세계 모든 나라들이 중지를 모아 해결해야 할 숙제다.

이들을 수용하는 문제에 세계 각국이 관심을 쏟되, 근본적인 원인이 된 IS를 격퇴하는 문제와 시리아의 국가적 재난과 빈곤을 해결하는 문제도 함께 머리를 모아야 한다. 이 문제의 원인이 근절돼야만 인류 모두가 안전하게 살고 지구촌의 평화가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juyoung@koreatimes.com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