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집 팔고 간 셀러 집안 전구 모두 빼 가지고 가

2015-08-2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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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우던 고양이 포함시켜면 집 살게요”

▶ “소음에 민감해서… 하룻밤 자봐도 되죠?”

【에이전트가 말하는 황당한 고객】

부동산 중개업은 서비스 업종에 속한다. 고객의 이익을 위해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에이전트가 유능한 에이전트다. 그러다보니 고객의 웬만한 요구를 들어주려고 노력하는 에이전트가 많다. 그런데 가끔은 에이전트들의 노력을 악용하거나 잘못 이해해 엉뚱한 요구를 하는 고객이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할 때가 있다. 부동산 거래와 관련된 요구사항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부동산과 상관이 전혀 없는 황당한 요구의 고객은 에이전트에게 골칫거리다. 온라인 부동산 업체 트룰리아 닷컴에 일선 에이전트들이 밝힌 고객 황당 요구사항에 얽힌 하소연을 들어본다.


■ 하룻밤 자 볼 수 있을까요?


고층 아파트 형태의 ‘코압’(co-op) 거래가 잦은 뉴욕에서 있었던 일이다. 침실 2개짜리 아파트를 구입하려는 바이어가 크리스틴 매그내니 에이전트에게 아파트에서 하룻밤을 자도 되는 지를 물어왔다. 소음에 민감한 편이라 야간 소음정도를 측정해 보고 싶다는 것이 바이어의 이유였다.

매그내니 에이전트는 물론 정중히 거절했지만 바이어의 황당 요구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럼 이번에는 밤 11시쯤에 매물을 볼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42층에 위치한 유닛에서 바이어의 취침시간인 밤 11시쯤 외부 차 소음이 들리는지 확인해 보고 싶다는 이유다. 에이전트는 셀러를 설득해 밤 11시에 집을 볼 수 있도록 가까스로 일정을 잡았다.

남들이 다 자는 시간에 아파트를 찾은 바이어는 이번에는 셀러 가족에게 잠깐 복도로 나가 줄 수 없느냐고 다시 황당한 요구를 들고 나왔다. 만약 복도에서 셀러의 아기가 울면 실내에서 들리는지 들어보고 싶다는 것이다. 셀러와 에이전트는 불편함을 잠시 뒤로 하고 집을 팔겠다는 목적으로 한밤중임에도 불구하고 하는 수 없이 잠시 복도로 자리를 비워줬다고 한다.


■ 길에 투명 벽이 있어요

LA 지역의 헤더 레이킨 에이전트는 한 고객으로부터 입지조건과 관련된 특이한 요구사항을 들어본 적이 있다. 웨스트LA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레이킨 에이전트는 이 지역에 집을 구입하고 싶어 하는 바이어들이 대부분 바닷가 바람을 좋아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 고객 역시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웨스트LA 지역에서 집을 보러다니는 고객이었다. 그런데 굳이 특정 길 서쪽에서 나오는 집만 보여 달라는 것이 이 고객의 주문이 었다. 이유인 즉, 고객이 지목한 길에 눈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어서 바닷바람이 그 길을 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 깜깜해 아무 것도 안 보여요


고객들의 황당한 행위는 부동산 거래가 모두 끝난 뒤에도 벌어진다. 에이미 로즈 헤릭 에이전트는 집을 팔고 나간 셀러의 행위에 다소 분노까지 느껴졌지만 이미 거래가 끝난 뒤라 어쩔 수 없었다.

한 셀러는 주택거래가 완료되고 이사를 나가면서 집안 곳곳의 전구란 전구는 모두 빼서 가지고 간 것이었다. 시간과 노력이 꽤 필요했을 텐데 남아 있는 전구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내 집을 마련했다는 들뜬 마음으로 에이전트와 새 집을 찾은 바이어는 깜깜한 한 집안에서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셀러가 이사 가기 전에 귀띔이라도 해줬으면 좋았겠지만 에이전트와 바이어는 전혀 예상치 못한 갑작스런 사태에 당황한 기색만 역력했다. 에이전트는 한 밤중임에도 그길로 당장 전구를 사러 달려갔다고 한다.


■ 바위 옮겨 주면 집 살게요

웨스트LA 지역의 레이킨 에이전트는 말리부에 위치한 고가 주택 리스팅을 바이어에게 소개해준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리스팅은 바이어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독특한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집을 건축할 때 자연상태의 바위를 제거하지 않고 거실로 들여온 것처럼 설계해 독특한 디자인이 특징인 리스팅이다.

이 리스팅이 매물로 나오기만을 기다리던 바이어들이 많았지만 레이킨 에이전트는 셀러가 바위를 제거해 주는 조건으로만 오퍼를 제출하겠다고 고집했다. 자연상태의 바위를 잘 살려내 가치를 인정받는 설계임에도 불구하고 바이어에게는 전망을 가로 막는 흉물에 불과했던 것이다.


■ ‘흰담비’가 뭐기에

한국 여성 연예인의 이름이 아니다. 족제비과에 속하는‘흰담비’(ferret)라는 동물 때문에 자칫 거래가 무산될 뻔한 적 있다. 뉴욕 레벨 그룹 소속 줄리 박 에이전트는 약 4년 전 침실 1개짜리 코압 구입 계약서에 바이어의 서명을 막 받아 놓은 직후였다.

여성 바이어는 에스크로가 끝나면 남자 친구와 함께 살 계획인데 지나가는 말처럼 남자 친구가 흰담비라는 애완동물을 키우고 있다고도 했다.

박 에이전트는 당시에는 귀담아 듣지 않았지만 동물명이 특이해 나중에 인터넷 검색을 해본 뒤에 문제가 발생할 거라고 직감했다. 흰담비는 1999년 줄리아니 뉴욕시장이 금지한 애완동물이라는 것이 검색 결과였다. 박 에이전트는 바이어와 10시간에 걸쳐 약 50여통의 이메일을 주고받는 끝에 흰담비에게 새 거처를 마련해주는 쪽으로 바이어 설득에 성공, 거래를 이어갈 수 있었다.


■ ‘야옹 야옹’, 저 고양이도 주세요

가구나 창문 장식, 샹들리에 등을 주택거래에 포함시켜 달라는 바이어의 요청은 꽤 흔하다.

그런데 집주인이 키우던 애완고양이를 포함시켜 주지 않으면 집을 사지 않겠다는 바이어도 있었다.

포틀랜드 지역의 패티 브로맨 에이전트에 따르면 바이어가 셀러의 집에 있던 고양이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구매 계약서에 특이하게도 고양이를 포함시켜 달라는 조건이 삽입됐고 다행히 셀러 측은 이를 받아들였다.

고양이의 실제 소유주는 집을 내놓은 셀러의 부모로 부모 사망 직후 자녀들이 집을 내놓은 것이어서 고양이를 넘겨주는데 큰 문제는 없었다.


<준 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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