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난민과 시민권

2015-07-1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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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데오도르 제리코 (1818~1819)의 ‘메두사호의 뗏목’이란 그림을 한번쯤 보았을 것이다. 거센 풍랑이 이는 바다위 뗏목에는 죽은 사람들이 널부러져 있고, 죽은 아들을 껴안은 노인, 인육을 먹는데 사용된 도구, 구명신호를 보내는 생존자 등 절망, 두려움, 고통, 비탄, 가녀린 희망이 가득 담긴 그림이다.

1816년 실제 사건으로 프랑스의 메두사호가 생루이 항으로 가다가 암초로 배가 좌초하면서 귀족들은 구명보트를 타고 달아나고 식민지 정착민들은 뗏목에서 15일간 음식물도 없이 치열한 생존투쟁 후 극소수가 살아남았다.


현재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걸린 이 그림을 보면 죽음의 바다를 거슬러 올라가는 난민들 모습이 보인다. 막 가라앉을 것 같은 작은 고무 보트위에 빼곡하게 들어앉은 난민들, 사람들의 표정에는 생에 대한 갈망이 가득한데 구조될 희망은 없다.

요즘 유럽의 가장 민감한 문제로 떠오른 난민들, 전쟁과 내란으로 목숨을 위협받은 난민들이 지중해를 통해 유럽으로 건너가다 떼죽음을 당하고 있다. 지난해만 지중해에 수장된 난민 수가 1만8,000여명, 아프리카의 에리트레아, 잠비아, 나이지리아, 소말리아, 중동의 시리아 난민들이다.

난민들이 처음 도착하는 유럽 땅은 유럽 외곽 지역인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몰타 등이다. 이들 대부분의 최종 목적지는 부유하고 안정적인 서유럽이나 북유럽 국가이다.

지난 3월 파노스 카메노스 그리스 국방장관은 유럽연합(EU)을 향해 ‘자신들을 도와주지 않는다면 유럽 난민들을 풀어버리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유럽의 주류세력인 유럽연합, 유럽중앙은행, 독일 정부 등이 계속 긴축을 강요한다면 그리스로 유입되는 난민을 유럽 전역으로 내보겠다는 것이다.

2003년 발효된 더블린 조약에 의하면 난민 신청자는 현재의 거주지와 상관없이 자신이 처음 들어온 유럽 연합 회원국에 머물면서 난민 심사를 받아야 한다.
처음 입국한 나라는 난민에게 거주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난민을 빌미로 도와달라고 협박하던 그리스는 13일(현지시간) 유럽재정안정화기구(ESM)로부터 제3차 구제금융을 합의, 한창 협상 중이다.

유럽 각 지를 여행하다보면 도시는 물론 소도시나 항구 어디를 가도 로마시대 유적이 남아있는 것을 보게 된다. 로마 시대 수로, 성벽, 성전은 물론 2세기에 지어진 원형극장 경우 지금도 오페라 야외공연장으로 사용되는 곳이 있다.

고대 로마가 대제국으로 군림했던 가장 큰 이유는 타민족에게 로마 시민권을 주는데 마음이 아주 후했다는 점이다. 기원전 270년경에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한 고대 로마는 패자를 노예로 만들지 않았고 타민족은 물론 노예에게도 시민권을 주었다. 고대 로마는 시민권 제도를 통해 다민족 사회를 통합해 나갔다.


오늘날은 미국이 세계 각국의 이민을 받아들여 다문화 다민족 국가로서 세계를 리드하고 있다. 500만 불법체류 이민자들을 구제할 것으로 기대되는 오바마 대통령의 이민개혁 행정명령이 임기 내 실현 될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하지만 미국에 사는 우리들은 모두 이민자라는 것을 수시로 기억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 유럽 국가는 난민들이 도망쳐 온 나라의 독재정권과 난민을 돌려보낼 협상을 하는 가하면 국경봉쇄 강화 조건으로 경제적 지원을 약속하기도 한다. 터지는 봇물을 억지로 막을 수 있을까. 손바닥으로 막으려다 물벼락 맞지 말고 차라리 그 물에 발을 담그면 어떨까. 경제적으로 안정된 나라일수록 난민을 더 많이 받는 정책 같은 것 말이다.

잘사는 서유럽과 북유럽, 경제위기에 봉착한 남유럽이 진정한 ‘하나의 유럽’이 되기에는 갈 길이 멀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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