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람에 의한 신기원

2015-07-1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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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국(소설가)

요즘 회자하는 말 중에 앤쓰로포신 에폭(Anthropocene Epoch) 이란 단어가 있다. 사람(anthro)에 의한 신기원이 시작됐다고 보는 견해다. 좋은 의미로만 회자되는 건 아니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파괴하면서 생태계를 변화시켜 스스로 악수를 두고 있다는 뜻도 내재해 있다. 지질학적으로는 약 1만5,000년 전부터가 홀로신 에폭(Holocene Epoch, 가장 최근의 신기원이라는 뜻)에 해당되는데, 이 시기에 사람들이 문명을 일으키고 눈부시게 발전시켰지만 결국 그런 인간의 행위로 인하여 지구의 종말이 올 수도 있다는 불안이 스며 있다. 지구의 주인이 자연이 아닌 인간으로 바뀌면서 결국 지구와 인간이 함께 파멸로 갈 수도 있다는 지질학자들의 경고가 담겼다.


이런 문제를 고민하다 우리끼리라도 뭔가 해보자고 풀뿌리운동을 일으킨 사람들이 있다. 시작은 퀸즈 대학의 지질학 교수인 스테파니 웨이크필드 교수지만, 누가 시작했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회장도 따로 없다. 퀸즈의 리지우드. M라인 서브웨이가 고가철도로 지나가는 바로 아래 철로 때문에 삼각형으로 지어진 집을 빌려 일련의 젊은이들이 조용히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다.

삼각형 모서리는 작은 도서관이고, 재봉틀도 한 대 놓여 있다. 거실에는 나무로 뚝딱 뚝딱 만든 긴 테이블과 벤치가 놓였고, 지하실은 목공예실이다. 자원봉사자인 청년 둘이 열심히 저녁준비를 하고 있다. 오래된 스토브 위에 놓인 찌그러진 큰 냄비에서 스프가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끓는다. 일요일 저녁이면 이곳에서 20-30명이 모여 함께 식사를 한다.

그러면서 토론도 하고 악기를 연주하기도 하고 서고 강의를 맡아 하기도 한다. 강의의 내용도 다양하다. 목공예, 맥주 만들기서 부터 야채 키우기, 다양한 서바이버 테크닉까지. 6월부터 10월까지는 업스테이트의 한 농장에서 싱싱한 야채와 과일이 배달돼 몫몫이 나누는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집이 우드바인에 있어서 우드바인 회로 불리는 이 자생적 그룹의 철학은 간단하다. 한 마디로 자율적 삶(autonomy)을 지향한다. 그리고 두려워하거나 한탄하기보다는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adaptation)하자는 씩씩한 취지가 엿보인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은 시대니 돌아가면서 간단한 식사를 준비하고 함께 나눈다.

우드바인 거리는 전형적인 다인종 도시의 한 모퉁이지만, 거기서 그들은 지구 차원의 환경변화에 적응하려는 새로운 움직임을 시작했다. 그저 좀 다른 식으로 사는 평범한 시민이라며 굳이 이름을 밝히기를 꺼려하는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래도 잘 생긴 청년이라는 말은 꼭 써달란다. 확실히 마음도 육신도 잘 생긴 청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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