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연의 매듭

2015-07-1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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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다미<갤러리 부관장>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기숙사 생활을 하며 새로운 학교생활과 각국에서 온 친구들 나라의 문화를 배우며 지내던 유학시절, 가장 친하게 지내던 일본인 친구 나호 수가누마와 함께 처음으로 버스에 올라탔다.

그때 어디선가 까만 긴 생머리의 동양여자 아이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친척이나 한국 친구 한명 없던 나는 버스 안에서 울려 퍼지는 나의 한국이름에 적잖이 반갑고도 당황스러웠다.


나의 뇌리를 스치는 그녀의 얼굴, 그녀는 몇 년 전 고등학교 시절 유학을 떠난 친구였다. 깨알같이 적은 편지들과 함께 입시전쟁(?)에서 탈출하는 듯 보이는 그녀를 마냥 부러워하며 이별을 고했었다.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란 생각으로.

3년 전 유학을 떠난 그 친구는 다시 고등학교 1학년부터 시작해 여전히 고등학생이었고, 난 대학을 들어간 후 유학을 온 거라, 우리의 뒤바뀐 상황이 너무 재미있었다. 우리는 도서관에서 자주 만나 함께 공부했고, 타향살이를 시작한 우리들의 한국말 수다는 그칠 줄을 몰랐다.

여름방학을 맞아 한국으로 돌아간 나는 카페에서 동네친구들을 만나 오랜만에 한국어를 실컷 쓸 수 있다는 생각에, 수다쟁이로 돌변한 나를 자꾸 힐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미국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는 그는, 나의 학교친구의 지인으로 몇 번 스쳐 지나간 적이 있어 나를 기억한다 했다. 지구 반대편에서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만난 것이 너무 신기하고 즐거운 일이라며 반가움을 한참 쏟아냈고, 한국말이 서툰 그에게 한국을 안내해 줄 친구를 소개시켜 주었고, 그 둘은 결혼을 해서 아들 딸 낳아 행복하게 살며 가끔 안부를 챙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 라며, 언젠가 한번쯤 같은 장소나 상황에서 만나는 사람을 인연으로 여기지만, 혹자는 그 옷깃은 만 번쯤 스쳐야 진짜 인연이라 한다. 좋은 말씀으로 유명한 한 스님은 지금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연에 충실하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기에 급급하지 말아야 한다고도 한다.

‘지구촌’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각종 SNS를 통해 초단위로 친구들과 대화하고 사진을 전송하며, 현재 어디에 있는지 어디를 여행 중인지, 무엇을 먹고 있는지 공유한다. 예전 어떤 프로그램에서 ‘전 세계 사람들은 6명만 거치면 모두 다 아는 사람’이라는 가설을 증명해 보이는 실험을 한 적이 있었는데, 정말 예상치 못한 곳에서 지인이 나타나고, 가본 적 없고 인사말 한마디 모르는 나라의 친구와 연결이 되어 있다는 흥미로운 결론을 보며, 묘한 정겨움과 함께 가슴이 설레었었다.

가족과 친지를 초청하는 경우가 많은 이민자들인 우리는 어쩌면 더 가까운 끈으로 묶여져 있는지 모르겠다. 친구들과 가끔 ‘한 사람만 거쳐도 다 아는 사람이고 누구누구의 친척이니 행동을 조심해야 해’ 라고도 하고, ‘누구랑 누구랑 이렇게 엮여있네’라며 탐정인 양, 그들의 관계를 유추해보기도 하며 생각보다 훨씬 우리들의 인연에 즐거워도 하고, 조금은 불편해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억만 명이 넘은 지구인들 속 같은 나라, 같은 지역, 같은 커뮤니티에 속한 우리 이민자들이 서로 한 끈으로 묶여있다 생각하고, 힘들 때 조금만 힘을 보태 이끌어줘서, 새로운 인연의 끈을 한 가닥으로 놔두지 말고 단단한 매듭을 만들어 가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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