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배신의 정치’

2015-07-0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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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영 (목사)

요즘 정치권에 소용돌이치는 한국의 메가톤급 뉴스 하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발언한 ‘배신의 정치’이다. 하필이면 박대통령만이 짙은 발언을 했을까. 심리학적 해부를 해보면 그 배후엔, 그녀가 어릴 때 겪었던 뼈저린 배신의 아픔이 아직 아물지 않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심리 속에 깊숙이 자리한 응어리가 표출된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그녀의 부친 박정희 대통령을 따르던 참모 정치인들이 하루아침에 여반장(如反掌)뒤집듯 배신하던 험한 꼴을 목격한 어린 가슴 속의 형언할 수 없었던 외로움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좀 살만 하면...‘이란 말이 유승민 원내대표에게 적용시켜도 합당한 말인지는 모르나, 못 살고 어려웠을 때 생사고락을 같이한 그가 어쩌면 그럴 수가 있을까? 무엇이 그토록 섭섭케 하고 분노케 했으며 괘씸하게 생각토록 했는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이 ‘배신‘이란 단어가 요즘 우리 사회 속에 부쩍 많아지고 있다.


‘의리를 지킨다’는 말은 유교도덕이 지배하던 이조사회 속에서 가장 큰 덕목 중의 하나였다. 즉, 신의를 지킨다는 것은 그 사회에 통용되던 하나의 커다란 가치관이었다. 그래서 충신들은 몸부림치는 인두, 물고문에도 입을 열지 않았던 것이다. 일제 강점기 때 만주에서 활약하던 독립투사 한 사람이 일본경찰에 검거되어 물고문을 받으며 결국 참지 못하고 동료동지가 있는 번지수를 제공하는 일이나, 로마 식민지 때 유대민족 독립투사의 대명사였던 제롯당원이었던 가룟이 은 30냥에 겟세마네에 은신하고 있던 예수를 로마정보기관에 넘기는 행위는 똑같은 맥락의 배신행위라 할 수 있다.

필자가 고등학교 때 미성년자 입장불가 ‘배신자’란 영화를 몰래 관람한 적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잭팟이 터져 횡재한 남편이 일평생 궁색하게 고생하며 참고 살았던 조강지처를 버리고 화류계 여자와 눈이 맞아 놀아나는 내용이었는데, 결국 이 영화는 해피엔드로 끝나지 못하고, 조강지처를 버린 남편은 벌을 받고 피눈물로 끝이 났다.

우리가 클 땐 안 그랬는데, 요즘은 배신이란 말이 흔해졌다.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살자고 성경위에 손을 얹은 지가 엊그제 같은데, 이혼이 OECD 국가 중 상위권이고, 보험금 노린 존속살해 배신극도 그렇고, 어려울 땐 새벽기도 다니며 살려 달라 애원해놓고 조금 살만하니 주일날 아침부터 골프채 만지는 것도 일종의 배신행위가 아닐까?

필자는 ‘박근혜 사모’회원이 아니지만 이번 박대통령을 동정하는 이유가 있다. 어릴 때, 죄 없는 부친이 한국의 K노회에서 정치목사들의 모략과 배신으로 억울하게 매장당할 뻔한, 간교하고 위선적인 목사세계를 일찍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제자들과 유대인들에게 배신당하고 십자가 지고 무덤 속에 매장 당하신 예수를 한층 더 심도 깊게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긴 했지만, 차제에 오늘날도 예수를 따른다고 자처하는 우리 제다들의 몸속에도, 그때 예수를 배신한 가룟과 베드로의 가족병력인 배신의 적혈구가 흐르지는 않나 다시 확인해 보고 싶은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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