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이비리그도 얻을 수 없었던 아이

2015-07-0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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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라<첼리스트>

스탠포드-하버드 동시 입학 사기극으로 최근 이민 사회에 작은 파장을 가져왔던 김정윤 양의 이야기가 이젠 외국 언론에도 적잖이 노출이 되어버린 듯하다. 어린학생이 꾸며낸 일이라기엔 이민 사회와 언론을 상대로 너무나 크게 일을 벌인지라 정말이지 나는 사실이었으면 하고 내심 바랐었고 또 사기라 판명이 난후에는 학벌 지상주의의 우리 한국인의 추한 이면을 드러내 놓은 것 같아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한국 본토의 입시과열은 이미 그 도를 넘어선지 오래고 또한 이곳 이민 사회의 과열 경쟁, 학부모들의 치마 바람 역시 미국 사회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을 만하다.
그런데 이토록이나 폭발 전야와 같은 입시 과열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엔지니어와 컴퓨터 사이언스 분야에서 전국 랭킹 1위를 자랑하는 브라운, 코넬, UC 버클리, 카네기 멜론의 학교에서 모두 입학 허가를 받고도 이중 어느 학교에도 진학 하지 않는 학생이 있다. 이 학생이 선택한 학교는 College of New Jersey 의 7 year Medical Program 이다.


물론 이 프로그램도 무척 좋은 조건을 제시하긴 하지만 명성으로 치자면 아이비리그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정도의 학교인 것이다. 그런데 이 아이가 이곳을 가는 이유는 의사가 되는 것이 결국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즉 과테말라의 고아원 아이들을 가장 잘 도와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처음엔 컴퓨터 사이언스로 이 아이들을 도와줄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내내 엔지니어링과 컴퓨터 사이언스를 목표로 공부를 해왔는데 마지막에는 의학을 통해 자기 꿈을 실현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던 듯하다.
이 아이 이야기는 한 해 전에 그 아이 어머니의 푸념을 통해 처음 듣게 되었다. 이 아이는 9학년부터 뉴저지 홈델의 시니어 하우스에 가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바이올린 연주를 해드렸는데 아이가 이것을 너무나 기뻐하였다 한다. 알려진 바와 같이 보통 대학을 가려면 사회봉사 시간도 채워야하고 리더십을 증명하는 엑티비티도 중요하다.

그런데 엄마의 성화에도 불구하고 이 녀석은 봉사 시간을 입증 받는 사인 받기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시간을 받으려고 연주한다면 그것이 무슨 봉사냐는 것이었다. 결국 3년 내내 애태우던 엄마가 마지막 12학년의 봉사시간을 어찌 어찌하여 받아온 모양이다.

이 아이는 매사가 이와 같았다. 우수한 성적으로 인하여 12학년 가을학기에 어느 대학교의 인턴십 기회를 제공받았는데 냉큼 다른 아이와 시간을 바꾸어 주어 버렸다. 같은 반 친구가 자기의 봄 학기 인턴십과 바꾸어 달라 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턴십의 기회를 통해 얻게 되는 많은 성과들을 겨울에 마감하는 대학교 입학 지원서에 올릴 것이 없어지게 되니 어느 누구도 바꾸어 주지 않았던 것인데 이 아이는 서슴없이 바꾸어 주었다.

아이 엄마만 애를 태울 뿐 아이는 확고하였다. 이 아이가 처음부터 이렇게 바보같이 양보만 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한다. 착하고 순하긴 하지만 나름대로 경쟁심도 있는 녀석이었고 또 전국 20위 권 안에 드는 뉴저지 H 고등학교 입학당시 3-4등의 랭킹으로 합격을 할 만큼 공부에 욕심도 없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9학년 때 성당에서 주선하는 과테말라의 고아원 봉사를 가게 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었던가 보다.

언젠가는 집에 오자마자 허겁지겁 밥을 먹는 아이가 이상하여 아이 어머니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점심을 굻고 그 점심 값을 모아 과테말라의 어린 친구들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딱히 가난한 집 아이도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 바이올린, 검도 등의 수업을 꾸준히 받고 부족함 없이 자란 아이다.

이 아이가 선교지 방문 후 인생이, 세계관이 바뀌어 버린 것이다. 이 아이의 고아원 친구들에 대한 사랑과 우정은 대단한데 9학년 이후로 한해도 빠짐없이 여름이면 과테말라에 선교를 갔었고 얼마나 혼자 공부를 했는지 지금은 스페인 어를 너무나 유창하게 구사한다고 한다. 전화가 없던 고아원에 전화가 놓이면서 아이들과 통화도 가끔 하는 모양인데 30분이 넘도록 아이들과 대화를 하며 자기가 작곡한 곡을 피아노로 쳐주기도 한다.

대학이 확정된 후 엄마에겐 차마 말 못하고 아버지에겐 은밀히 양해를 구하는 중인 모양이다. 대학교에 입학하면 한해는 휴학을 하고 과테말라에 가서 일 년간 아이들을 위해 봉사 하겠다고. 여름에 2주 남짓 가는 것으로는 충분히 도울 수 없다고. 이 아이는 말한다 하루 종일 돈 버는 기계처럼 매여서 일만하는 불쌍한 인생이 아니라 적게 필요한 만큼만 벌고 가족과 이웃을 위해 사는 행복한 삶을 살 거라고.

이런 아이에게 아이비리그 졸업장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이런 아이에게 거절당한 엔지니어와 컴퓨터 사이언스 분야에서 미국 내 최고이며 세계 대학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브라운, 코넬, UC 버클리 등의 학교는 그들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이 소중한 인재를 자기 사람으로 할 수 없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아이가 내 주변에 있고 우리의 미래 가운데 있게 될 것을 생각하며 나는 너무도 기쁘고 자랑스럽다. 이태석 신부처럼 오래도록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의사 선생님이 되기를, 그래서 우리들 안에 선한 것이 아직도 남아 있음을 가르쳐 주는 진짜 선생님이 되기를 나는 은밀히 소망해 본다. 로버트야,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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