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랑의 신호’

2015-07-06 (월)
크게 작게
연창흠(논설위원)

해가 떨어지자 어둠이 서서히 짙어진다. 뒤뜰에도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다. 그 어둠 사이로 불이 공중을 떠돈다. 예전에 보지 못한 반짝거림. 바로 반딧불이다. 청정자연에만 산다는 반딧불이. 그 곤충이 처음으로 찾아 온 것이다.

어린 시절 친숙했던 반딧불이. 이 얼마만의 만남인가. 아주 오랜만이다. 어둠 속에서 작은 불이 날고 있다. 그 희미한 빛을 따라 뒤뜰로 나섰다. 공중을 날던 불들이 풀숲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꽁무니에 호롱불을 매단 채. 어느새 작은 불꽃을 피어낸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꽁지에 불을 켜고 날개 짓 한다. 파르스름한 빛의 춤을 춘다. 어둠 속을 나는 영롱한 불빛이다. 꼬리의 불빛은 일정하게 깜박인다. 사라지고 나타남을 반복한다. 떼로 몰려다니며 반짝이는 군무. 밤하늘을 멋지게 수놓는다. 참으로 신기하다. 그 작은 몸에서 어찌 저런 ‘반딧불’을 낼 수 있는지.

가만히 지켜보니 신기한 점이 있다. 불빛의 밝기가 다르다. 깜박임에 리듬도 있다. 동료를 따라 박자를 바꾼다. 불빛 리듬이 일치된다. 궁금했다. 인터넷 검색에 나섰다.
‘반딧불이‘는 스스로 빛을 내는 곤충이다. 꼬리 쪽 배의 끝마디에 발광체가 있다. 그 것이 빛을 발한다. ‘반딧불’이다. 암수의 빛 밝기는 다르다. 수컷이 두 배 가량 더 뿜어낸다. 사랑을 나누고 싶은 열정의 신호다. 암컷을 향한 유혹의 손길이다. 결국 ‘반딧불’은 사랑의 신호인 셈이다.
암수가 꽁지불빛의 리듬을 맞춘다. 자신이 어떤 종인지를 알리는 표현이다. 같은 종을 찾는 신호다. 짝에게 유혹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짝짓기로 종족보존에 나서는 행위인 셈이다. 이렇게 짝짓기를 하는 걸보면 전 세계 2,000여 종의 ‘반딧불이’는 모두 단일혈통(?)일 게다.

‘반딧불이’는 ‘반디’, ‘반딧불’, ‘개똥벌레’ 등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다.
중국에서는 밤에 켠 촛불이라는 의미의 소촉(宵燭)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영어는 불빛을 내는 파리인 파이어 플라이(firefly)다. 일본어로는 불을 받든 벌레인 호타루(ほたる), 독일어 로이히트케퍼(Leuchtk?fer)는 불을 켜 든 투구풍뎅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반딧불이’는 개똥벌레로 잘 알려져 있다. 지천에 깔린 곤충이었다는 뜻에서 개똥이 벌레 앞에 붙은 것으로 보고 있다. 예전에 개똥만큼이나 흔하던 벌레라는 뜻이 담겨 있다는 말이다.

‘반딧불이’하면 형설지공(螢雪之功)의 고사가 먼저 생각난다.
옛날 중국 진나라시대 가난하여 주머니에 ‘반딧불이’를 잡아넣고 다니면서 그 불빛으로 책을 읽어 상서랑이라는 관직에 올랐다는 차윤지형(車胤之螢)이나, 역시 가난으로 기름을 살 수 없어 겨울이면 흰 눈빛에 책을 읽었다는 손강영설(孫康映雪)의 고사이다. 가난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해 성공했다는 교훈으로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훈훈하게 해주는 이야기다.

도깨비불. 그 정체는 ‘반딧불이’가 내는 불빛이다. 사람들이 ‘반딧불’을 오해한 것이 도깨비불인 것이다. ‘반딧불이’는 간혹 거미줄에 걸려 죽음을 맞이할 때가 있다. 이때 내는 불빛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그야말로 도깨비불처럼 보이는 것이다. ‘반딧불이’가 빛을 발하는 것은 루시페린(Luciferin)이란 발광체 때문이다. 루시페린의 어원은 루시퍼(Lucifer). 서양에서 불을 내는 악마가 루시퍼다. 그렇게 보면 도깨비불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는 듯하다.

뒤뜰에 찾아온 ‘반딧불이’
하늘에 별빛, 땅위에 반딧불을 보며 꿈같은 날들을 보내고 있다. 분주했던 삶에서 한 발 물러서 청정뒤뜰(?)에서 여유로움을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신호인 ‘반딧불’이 상큼한 행복을 주고 있음이다.

어느새 7월. 내일은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소서다. 마침 아이들도 여름방학이다, 세상일에 찌들었던 마음을 내려놓고 씻을 수 있는 좋은 계절이다. 자연 속으로 떠나보자. 별빛을 바라보며 풀벌레도 벗삼아보자. 그러다보면 다시금 맑은 숨을 쉴 수 있지 않겠는가?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