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리스, 철학이 죽었다

2015-07-0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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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객원논설위원>

인생에 철학이 없다면 어떤 사람이 될까. 철학 없는 사람! 철학(哲學)이란 그리스어 필로소피아로 지혜를 사랑한다는 뜻이다. “지혜란 일상생활에서의 실용적인 지식이 아닌 인간 자신과 그것을 둘러싼 세계를 관조하는 지식”을 말한다. 흔히 그 사람은 철학이 없어 할 때 그 의미는 그 사람은 속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철학은 인생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말과 글에도 적용된다. 깊이 있는 말이나 글에는 반드시 철학이 들어있게 마련이다. 지혜가 들어있지 아니한 말과 글은 속빈 깡통일 수 있다. 빈 깡통 일수록 소리가 요란하듯이 철학이 깃들지 아니한 말과 글은 속빈 강정같이 겉만 번지르르 보이게 될 수 있다. 철학은 곧 지혜와 같다.


세기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낳은 그리스가 국가부도 위기에 몰려 세계의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서양철학의 근간이랄 수 있는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 플라톤.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 이들을 빼곤 서양 철학을 논할 순 없다. 영국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 헤드의 말.

“서양의 2000년 철학은 모두 플라톤의 각 주에 불과하다.” 주(註)란 뜻을 풀어 놓은 주석(註釋·foot note)을 말한다. 이 말은 서양철학이 뻗어 나온 기둥과 가지와 잎들은 모두 플라톤이 말한 철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리스 철인(哲人)들 없인 서양 2,000년의 철학사를 논할 수 없다는 해석이 될 수도 있다.

서양철학의 대부를 낳은 그리스가 왜 이렇게 국가부도의 나라가 됐을까. 가장 큰 원인은 뇌물과 부정부패문화에 있다. 그리스를 망하게 하는 것은 파켈라키(fakelaki)와 라우스페티(rousfeti)란다. 파켈라키는 그리스어로 ‘작은 봉투’를 뜻한다. 운전면허증, 의사면허등과 각종 세금등을 줄이기 위해 사용되는 돈 봉투다.

라우스페티는 교사 고용 등에서부터 그리스정교회 신부를 뽑는데 까지 주어야 하는 정치적인 대가를 뜻한다. 이것도 뇌물의 일종이다. 오스트리아 린트대학의 프레데릭 슈나이더 교수의 말. “그리스에선 걷혀야 할 세금의 4분의 1이 걷히지 않는다. 그리고 이의 3분의1은 뇌물에 쓰였을 것”이라고. 세금이 뇌물로 사라지고 있다.

철학의 나라 그리스는 올림픽의 기원도 갖고 있다. 기원전 776년에서 393년 사이에 4년마다 열렸던 올림픽은 그리스의 주신인 제우스에게 바치는 제전경기였다. 올림픽참가자격은 그리스의 도시국가에서 시민권이 있고 범법행위가 없으며 주신 제우스에 대한 불신행위가 없던 자에게만 한했다. 페어플레이의 올림픽정신이다.

그 정신은 어딜 갔나. 현대 올림픽위원회인 피파(FIFA)가 뇌물수여로 곤혹을 치루고 있다. 그리스의 부정부패문화와 연관이 있는 것 아닌가. 기원전 400여 년 전에 세계최초의 고등교육기관이며 현대대학의 원형인 아카데미아(academia)가 그리스 아테네에 세워졌다. 플라톤이 세운 장본인이다. 플라톤의 이데아 지금 어디에 있나.

플라톤은 정욕적 부분의 덕을 절제로, 이성의 명령에 복종하여 정욕을 억압하는 덕을 용기로 보았다. 또 정의란 여러 덕이 알맞게 그 기능을 발휘할 때의 상태를 나타내며 이러한 덕론을 통해 개인의 윤리학을 설파했고 정의의 실현은 개인이 덕을 달성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덕을 달성해야 이루어진다고 설파했다.
2,400여년 전 그리스 젊은이들을 상대로 정의실현을 외쳤던 플라톤의 철학은 이제 그리스에선 찾아볼 수 없다. 그리스는 철학이 죽었다.

돈과 뇌물만이 판치는 나라다. 덕의 철학과 올림픽 정신인 페어플레이를 잊어버린 민족, 그리스. 철학도 올림픽정신도 돈 봉투에게만은 당할 수 없나보다. 그러나 남의 일이 아님을 알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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