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무지개가 떴다

2015-07-0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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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2015년 6월 26일 미국 대법원이 동성결혼을 전면적으로 인정하는 역사적 판결을 내렸다. 28일 12시 맨하탄 5애비뉴에서 열린 성소수자 및 동참자 2만2,000여명이 참여한 ‘동성애자의 프라이드 연례퍼레이드’를 구경갔다.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성적 다양성을 지닌 행렬이 춤추고 노래하며 지나가는 보도에는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무지개색의 모자, 깃발, 머리띠, 넥타이, 의상을 입고 환호성을 지르며 ‘동성결혼 합법’을 축하해주었다. 살짝 부슬비가 내리는 맨하탄 하늘에 무지개가 떴다. 온통 무지개로 뒤덮혔다. 빨-주-노-초-파-보의 6색 무지개 깃발은 성적 소수자의 프라이드를 상징한다.


똑같은 검정 양복 차림으로 거대한 케익 모형 박스위에 올라선 게이 커플은 오늘 결혼했다며 결혼반지를 자랑한 뒤 키스를 하고 조금 뒤에 온 자동차 행렬 위에서는 금발의 긴 머리카락을 날리며 레즈비언 커플이 키스를 했다. 서너살짜리 남자아이는 화려한 왕관을 쓰고 무지개빛 드레스를 입고 춤추며 걸어가고 짙은 화장과 무지개색 드레스를 입은 트랜스젠더 행렬에는 동양인도 제법 있었다.

행렬 중에는 인권단체 지지자들과 구글, 애플 컴퓨터, 코카콜라, 스타벅스, 시티뱅크, 뉴욕라이프 등등 회사 직원들이 대거 참여하여 자유, 인권, 평등을 외쳤다. 이날 밤, 워싱턴 DC 백악관 외벽도 무지개색 조명으로 장식되었다.

현재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국가는 21개국, 가장 먼저 허용한 국가는 2000년 의회에서 동성결혼 허용 헌법을 통과시킨 네덜란드이다.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은 동성애에 투석형 등 극형을 가하기도 한다.

교계에서는 이미 동성결혼 예식을 허용한 그리스도연합교회, 미국 장로교회, 두 개신교단에 이어 1일 미국 성공회도 동성커플에 대한 결혼예식을 허용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반면 미국 장로교 한인교회 전국총회는 동성결혼 불허 입장을 밝혔다. 한인사회에서도 ‘결혼은 이성간에 이뤄지는 것’이라며 이번 대법원의 결정에 당혹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불과 50년 전, 게이 또는 레즈비언이라고 커밍아웃 했다가 사회적 매장을 당한 경우가 많았다. 이젠 버젓이 교회에서 동성커플이 결혼식을 올리니 세상은 참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동성애자를 상징하는 무지개색은 1978년 미국화가 길버스 베이커가 디자인한 것으로 원래 8가지색이었으나 핑크색과 남색이 빠지고 현재의 빨주노초파보 6가지 색상으로 되었다. 빨강은 삶, 주황은 치유, 노랑은 태양, 초록은 자연, 파랑은 예술, 보라는 영혼을 의미한다.


게이 퍼레이드를 보면서 별반 충격적이지 않았던 것은 그들이 다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 것이다. 눈에 띈 것은 트랜스젠더들의 짙은 화장과 화려한 드레스, 그것도 뭘 입고 어떤 치장을 하건 뉴욕에 사니까 별반 놀랄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 무지개색이 우리와도 낯익었다. 돌을 맞은 어린이의 색동저고리다. 6세기 고구려 벽화에서 보듯 음양오행설에 따라 액을 막고 복을 받기위해 오방색(五方色) 천을 이어서 옷을 지었다. 빨강, 노랑, 파랑, 하양, 분홍, 청색의 6가지색에 때로 연두, 남보라, 자주색 헝겊을 이어서 만든 색동은 저고리, 마고자, 두루마기 등에 두루 쓰였다. 만물이 화합하고 조화를 이루어 기쁨과 행복을 기원하는 의미였다.

사실, 색동에서 빨강이나 파랑, 노랑 어느 한가지색이 빠지면 밸런스가 깨져버린다. 각각의 색이 개성, 정체성을 서로 존중하면서 함께 있어야 한다.

무지개색은, 사람은 저마다 개성과 취향, 성격, 버릇 모든 것이 다르다는, 이 다양성이 모여 아름다운 조합, 조화, 질서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를 일찌감치 실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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