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하나가 되게 하소서

2015-06-2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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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 (아동문학가/ 목사)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사상을 대표하는 말이 ‘사티아그라하’(Satiagraha)이다. 본래 간디의 사상을 말한 용어인데, 인도 말로 사티아는 사랑, 그라하는 힘이다. 즉 사랑의 힘이란 뜻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사랑의 힘으로만 가능하다고 주장한 것이 킹 목사의 메시지였다.

노동자를 하나의 ‘일손’으로, 사회를 비인격적인 톱니바퀴(Impersonal cogs)로, 나라를 하나의 생산 공장으로 보는 비인간화(Depersonalize) 사회에서는 평화도 민주주의도 기대하기 어렵다. 구석구석에 사람 하나하나에 대한 애정이 깔려 있어야 천국이 싹튼다는 것이 성서의 사상이다.


인류가 지난 100년 동안 100회 이상의 전쟁을 치루며 뼈저리게 배운 진리는 대립보다 공존(共存)이 낫고, 이데올로기(이념)보다 사랑이 나으며, 자원보다 두뇌가 낫다는 사실이었다. 이것은 곧 기독교가 외쳐온 메시지이기도 하다. 기독교의 사명을 내 교회의 의자를 채운다는 작은 생각에서 벗어나 지구촌에 하늘나라를 건설한다는 큰 생각으로 바꾸어야 한다.

‘탕자의 비유’(누가복음 15장)는 너무나 유명하다. 탕자의 형이 하루의 작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집안에서 노래 소리가 들려 나왔다. ‘노래 소리’는 성경 원어인 그리스어로 ‘숨포니아’이며 복수형이 사용되어 많은 사람들의 합창을 뜻하고 있다. 그것은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가출했다가 빈털터리가 되어 돌아온 탕자를 환영하는 기쁨의 대 합창, 용서의 코러스였던 것이다. ‘숨포니아’를 듣는 형의 기분이 몹시 상하였다. 그는 집에 들어가 합창에 합류하지 않고 시무룩하게 문 밖에 서 있었다.

예수는 이 비유에서 숨포니아에 합류하는 ‘문안의 사람들’과 자기의 의(義)로 굳어진 ‘문밖의 사람‘을 대조시키고 있다.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자와 함께 슬퍼하는 것이 예수의 숨포니아 곧 천국 합창인 것이다.

사티아그라하 곧 사랑의 힘은 킹 목사의 사상이고, 숨포니아 곧 기쁨의 합창은 성경의 사상이다. 이 두 사상은 서로 맞물려 있다. 사랑의 힘이 기쁨의 합창을 일으키는 것이고, 기쁨의 합창에 동참할 수 있는 사람이 사랑할 힘을 갖는다. 음악의 용어를 빌리자면 사티아그라하(사랑의 힘)도 화음(和音)이고, 숨포니아(대 합창)도 화음이다. 피풀스 사전은 화음을 이렇게 정의하였다.

“서로 다른 소리들을 하나로 묶는 작업이다. 그래서 더 자연스럽고 발전된 새 질서를 창조하는 음악 형성 3대 요소 중의 하나이다.” 여러 다른 음들이 모여 더 높은 아름다움과 질서를 창출한다.

예수의 마지막 기도는 그를 따르는 자들이 “하나가 되게 하소서”하는 것이었고(요한복음 17:11), 바울의 최후의 소원도 교회가 한 마음이 되는 것이었다.(로마서 15:6) 역사가인 누가는 부흥하는 초대교회의 모습을 ‘함께 나누는 사랑’으로 표현하였다.(사도행전 2:44) 즉 하나가 된 것이 초대교회 부흥의 동력이었던 것이다.

나라도 문화도 개인도 서로 차이점이 있다. 차이점은 나쁜 것이 아니라 필요하며 발전의 요소가 된다. 많은 음은 제각기 다른 소리이지만 화음이 만들어질 때 더 아름다운 음악이 된다. 많은 색깔은 혼란이 아니라 미술가의 손으로 조화 있게 배치될 때 아름다운 예술품이 된다. 사랑을 말하는 것은 결국 조화를 이루는 것을 뜻한다. 음식이나 정서의 조화가 깨지면 병든다. 건강이란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이다.

조화의 효능은 한국인의 ‘젓가락 미학(美學)’이 잘 표현한다. 젓가락은 두 가락의 조화로서 그 효능을 발휘한다. 그것은 마치 2중창과도 같다. 찔러 먹는 서양인의 포크와는 예술적인 면에서 사뭇 다르다. 어려서부터 터득한 젓가락 예술의 조화를 이웃이나 타민족과도 만들어 나가는 것이 미국 속에 사는 한국인의 사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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