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6.25전쟁과 경각의 횃불

2015-06-2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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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를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친구 두고 온 하늘가... 홀로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닯어/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6월이 되면 한명희 작사 장일남 작곡의 노래 ‘비목(碑木)’이 유난히 가슴절절하게 와 닿는다. 65년 전 한반도를 피로 물들인 6.25동란의 비극을 우리에게 생생하게 일깨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1950년 6월25일 새벽 4시경,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남침을 시작, 준비도 없던 남한은 뜻밖의 기습을 받아 한국측만 군 사상자 63만명, 민간인 사상자 모두 99만1,000여명을 양산하면서 전 국토가 피로 물들었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까지 6.25전쟁이 남한이 저지른 소행이라고 발뺌을 하고 있다. 구소련의 공산당 서기장 후루시초프가 자신의 회고록에 다음과 같이 분명히 밝히고 있는데도 말이다.

“김일성은 스탈린과의 협의를 위해 대표단을 이끌고 왔다... 김일성은 남한에 일격만 가하면 내란을 유발하여 공산화된다는 것이었다. 한국전쟁은 미국의 개입이 염려됐지만 속전속결로 하면 승리할 수 있다면서 김일성 자신이 앞장서서 도발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미국의 과감하고 신속한 움직임으로 한국군이 낙동강까지 밀려날 즈음 유엔의 연합군 파병 결의와 함께 출정한 연합군 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장군의 지휘로 인천상륙작전에 성공, 압록강근처까지 북진했다. 그러나 중공군이 인해전술로 내려와 연합군과 한국군은 다시 38선 부근까지 후퇴, 결국 휴전협정을 하기에 이르렀다.

전역 후 맥아더가 미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사라져 갈 뿐이다(Old soldiers never die, They just fade away)”고 한 연설은 지금도 우리들 뇌리에 그대로 살아 있다.
한국은 맥아더장군의 강한 추진력과 연합군 참전용사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쯤 이미 공산화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이들의 숭고한 업적과 희생은 영원히 잊을 수도, 또 잊혀져서도 안 되는 값진 역사다. ‘저 땅 끝의 자유와 평화를 회복하리라’는 문구의 워싱턴 기념비에 담긴 미군 54246명/ 유엔군 628833명... 등 희생된 수많은 참전군인들의 숫자가 우리를 숙연케 한다.

생존한 미참전용사들은 “가난하고 초라한 나라가 이제 전쟁의 아픔을 극복하고 세계에서 손꼽히는 경제 강국으로 발전됐다”며 모두들 감격해 하고 있다. 과연 한국의 젊은이들이 이들이 흘린 피의 대가로 오늘날 잘 사는 것에 대해 알고나 있는 건지...

총소리는 멎었지만 아직도 한반도는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군사분계선에 여전히 남북한이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은 지금 일부에서는 북한의 눈치만 살피고 국론이 분열된 상태로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정작 고마움을 느껴야 할 당사자들이 오히려 6.25가 준 고귀한 값어치와 소중한 교훈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계 미국인인 우리만이라도 한국을 위해 흘린 미참전군인들의 값진 희생의 대가를 기억하고 이를 후세들에게 바로 알리고 살아야 옳지 않을까. 우리는 이미 그 소중한 피의 대가와 그 인연으로 해서 먼 미국에까지 대거 이민 와서 뿌리를 내리고 잘 살고 있다.

우리가 살아 있을 때 굳건한 한미동맹 관계유지에 열심히 일조를 하면서 참전용사들이 흘린 피가 헛되지 않도록 후손들에게 6.25가 지닌 교훈을 일깨우는 경각의 횃불을 힘껏 들고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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