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슴도치 딜레마’

2015-06-2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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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창흠(논설위원)

우리네 삶은 다양한 사람과의 만남이다. 가족, 친구, 연인, 지인. 이외 사람들과 어울려 산다. 살다보면 기쁠 때가 있다. 상처를 받기도 한다. 때론 ‘사람이 무섭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고 혼자 살 수는 없다. 더불어 살아야한다. 산다는 건 결국 관계 맺음의 연속이다. 삶에서 서로의 관계가 좋아야 하는 이유다.

좋은 관계의 비결은 ‘사이’에 있다. 서로의 사이가 좋아야 한다는 말이다. ‘사이’라는 것은 한자로 간(間)이다. 사이가 좋다는 것. 그것은 서로가 빈틈없이 딱 붙어 있음이 아니다. 너무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바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그런 의미다. 다시 말하면 빈틈없는 사이는 좋은 사이가 아니다. 그건 사이가 없음일 뿐이다. 즉, 서로 간에 적절한 거리,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좋은 인간관계란 의미가 아닐까 싶다.


사회학자인 에드워드 홀은 인간사이의 거리에 따라 인간관계를 네 가지 영역으로 분류했다.

첫째는 45cm 이내의 밀접거리다. 이는 아주 가까운 영역의 사람관계를 나타낸다. 남편과 아내, 부모자식 그리고 연인과의 사이가 해당된다. 언제나 스스럼없이 신체적 접촉이 가능한 거리다.

둘째는 개인거리다. 45-120cm 정도의 손을 뻗으면 닿은 수 있는 거리다. 이 거리는 사적인 공간의 범주이다. 친구나 가깝게 아는 사람들을 만나는 거리라 할 수 있다.

셋째는 120-360cm의 사교거리다. 사회적 활동의 영역이다. 직업적 활동이나 인터뷰 등 공식적인 상호작용을 할 때 필요한 간격이다.
넷째는 공중거리다. 360cm 이상의 거리로 대중적 영역이다. 대중 앞에서 공개적인 만남을 뜻하는 거리다. 무대공연자와 관객처럼 떨어져 앉아 있어 서로 알지 못하는 거리이기도 하다.

이처럼 사람 관계에 따른 적절한 거리유지는 매우 중요하다. 가족보다 친구의 거리가 가까우면 탈이 나기 마련이다. 연인과의 거리가 연예인보다 더 멀어도 문제인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과잉보호하면 적절한 거리라 할 수 없다. 가족 두고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는 서로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할 때, 좋은 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는 의미다.

어떤 이는 적절한 ‘거리유지’를 두 사람 사이에 묶여 있는 고무줄에 비유한다. 고무줄이 어느 정도 팽팽함을 유지할 때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최적상태가 된다는 논리다. 한 쪽이 너무 가까이 다가오면 서로 관계에 빨간불이 켜진다. 한 쪽만 멀리 달아나도 적신호가 들어오기는 마찬가지다. 때문에 한쪽이 다가와 고무줄이 느슨해지면 다른 한쪽이 팽팽함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반대로 너무 멀어지면 상대에게 가까이 다가감으로써 관계를 정상으로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노력이 없다면 관계는 깨지고 서로 무관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좋은 관계를 위한 적절한 ‘거리유지’는 서로의 끊임없는 노력에 의해 좌우된다는 결론인 셈이다.

독일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우화 가운데 ‘고슴도치 딜레마(Hedgehog Dilemma)’라는 것이 있다. 그 내용은 대충 이렇다. 고슴도치들은 날이 추워지면 서로에게 아주 가까이 다가간다. 추위를 막기 위해서다. 그러나 서로의 가시에 찔려 서로 멀리 떨어진다. 그러면서도 곧 추위를 느끼고 서로 가까이 다가가지만 이내 서로의 가시에 찔린다. 아픔을 피하려 또 다시 멀어진다.


그들은 추위와 아픔사이를 왕복한다. 그러다 마침내 서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게 된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도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절묘한 거리를 찾은 것이다. 이 이야기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적절한 거리’ 유지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주변에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다. 가족일수도 있고 친구나 지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선뜻 도움을 청하지 못한다. 그저 머뭇거릴 뿐이다. 왜냐면, 다가서면 오히려 그동안 맺은 좋은 관계가 깨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주변을 둘러보자. 내가 필요하면서도 망설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다가오지 못하고 오히려 멀어지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먼저 기꺼이 다가가야 한다. 외면하지 말고 따스함을 전해야 한다. 그렇게 사이가 좋은 관계를 유지할 때 진정한 행복과 사랑은 피어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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