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간, 생명체 그리고 인권

2015-06-2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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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경 (편집실 부국장 대우)

한국은 연일 메르스사태로 온 나라가 뒤숭숭하다. 밤새 안녕이란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이다. 사태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안전이 우선이라며 14일 잡힌 방미 일정까지 연기했다.

하지만 메르스보다 훨씬 무서운 세균이 한국 땅에 들어와 있음을 간과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난달 말 미 국방부는 살아있는 탄저균 샘플이 주한미군 오산기지에 잘못 배달됐음을 시인하고 사과했다. 메르스 치사율이 40%라면 탄저균은 치사율이 95%나 되는 엄청난 생화학무기이다.


미국에서도 9.11테러 직후 ‘백색가루’로 인해 5명이 숨지고 17명이 감염되어 우리 한인들도 공포에 떨게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 탄저균 소식이 메르스 사태로 인해 언론에서조차 밀려나고 있음을 본다.

그런데 폭스뉴스는 며칠 전 “한국내 탄저균 유출로 주한미군, 한국인 등 22명이 노출돼 치료 중”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메르스 확산으로 정신이 없어 탄저균 배달 사고는 묻히고 있는 게 아닌가 했다. 이는 방역에 구멍이 뚫린 보건당국과 우리 국민들에게 또 다른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탄저균은 일제 강점기 악명 높은 731부대에서 우리 한국인들과 중국인들에 행해졌던 생체실험 세균이다. 우리 귀에도 익숙한 일명 ‘마루타’가 그 실험인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이 731부대의 책임을 맡고 있던 이시이 중장은 세균전 연구결과를 미국에 넘겨주는 대가로 전범기소 면제를 받고 후에 미국으로 건너가 첨단시설이 갖춰진 육군기지에서 세균무기 개발도 참여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번에 다시 그 부대에서 만들어진 살아있는 세균이 우리 땅으로 들어 온 것이다. 그것도 Fedex를 통해 버젓이... 이렇게 미군이 아무런 제지도 없이 한국에 탄저균을 보낼 수 있는 것은 SOFA 협정 덕분이다. 미국이 주한미군에 보내는 군사화물은 한국 세관검사 없이 무사통과이기 때문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은 미군에 의해 한강에 버려진 독극물로 인해 탄생한 괴생물체와 평범한 서민들의 사투를 그린 영화이다. 주한미군은 “오산 공군기지에 있는 응급격리시설에서 탄저균 표본을 폐기 처분했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고 있다.

탄저균은 포자가 땅에 떨어지면 100년간 생존할 수 있고 그곳에 생물은 영원히 살 수 없다고 한다. 이렇게 치명적인 독성을 가진 세균의 유입이나 처리 방법 등을 주권국은 아무런 정보도 대책도 없이 바라보고만 있다.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고 한반도가 생화학 실험실이 되도 손을 놓고 있다. “인간은 생명체이고 생명체보다 더한 인권은 없다.”는 불교 인권단체의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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