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도덕적 해이

2015-06-1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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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작년 11월 뉴욕에 에볼라 환자가 처음 발생한 이후 병원에 가면 사무장이나 혈압을 재러 온 간호사가 가장 먼저 묻는 말이 “최근에 서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느냐? “는 것이었다. 이번 6월 달에 간 두 곳의 병원에서는 간호사가 가장 먼저 “최근에 한국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 (하이고, 불쌍한 대한민국!)

11일 연방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미국내 의료진과 보건당국자들에게 미국내 메르스 발생 가능성에 대비, 담당환자의 한국여행 여부를 확인해 달라고 전한 것이다.
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 MERS)로 한국 전 국토가 마스크를 쓰고 있다. 지난 5월 20일 중동 지역을 다녀온 첫 번째 환자가 발생한 이래 한 달째 아직 메르스는 물러가지 않았다. 이번 메르스 사태를 보면서 황당하고도 씁쓸한 일들이 몇 가지 있다.


첫째는 환자의 병이 낫지 않아 여러 곳의 병원을 전전하며 마구, 마구 바이러스를 전파하고 있는데도 정부가 초기대응하지 못했고 상황을 알게 된 후에도 병원들 실명을 공개하지 않은 것이다.

또 의심 증상이 일어난 환자가 지하철을 타고 직장과 모임에 나가고 여행을 가는 가하면 심지어 공중목욕탕에 가는 등 그야말로 모럴 해저드(Moral Hazard, 도덕적 해이) 행위가 널리 퍼졌다는 점이다.

사회적 위해를 끼치거나 말거나 나는 윤리적, 도덕적 책임 없다는 식의 무신경, 몰염치, 지나친 이기주의와 서민의식 실종이 이번 사태를 더욱 확대시켰다.

둘째는 여전히 한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병원 위문 습관이다. 병원 응급실은 촌각을 다투는 환자의 골든타임 지대인데도 불구, 사고 소식 듣자마자 환자 침상으로 몰려든 직계가족, 사돈, 팔촌의 집결지가 된다. 또 미국에 비해 병실 출입이 자유로운 가족들이 환자 침대 옆에서 시중을 들면서 더욱 병을 전파시킨 점이다.

세 번째 문화체육부가 메르스로 인해 뚝 끊어진 해외관광객 유치를 위해 15일 발표한 ‘메르스 관련 관광업계 지원 및 대응방안’이다. 22일부터 시행한다는 1년간의 메르스 안심보험 대책은 국가가 아닌 동네 구멍가게 관광객 유치 수준이다.

외국인 방문객이 한국 체류 시 메르스 확진이 판명나면 치료비는 전액 무료이고 보상금 3,000달러, 사망 시에는 1억 원을 준다고 한다. 죽음을 각오하고 한국에 놀러온 본인은 죽고 보상금은 가족이 가지라는 것인가?

한국인 환자는 긴급생계비 40만9,000원이 고작이고 죽으면 그냥 빈손이란다. 아니, 이 병은 메르스 바이러스 매개체인 낙타가 있는 중동에서 들어온 병이 아닌가. 바레인을 방문했던 첫 번째 환자로 인해 같은 병원에 있다가 전염된 환자, 환자가족, 환자를 치료하다가 감염된 의료진들, 이들 중에 낙타를 만지고 중동을 다녀온 이들이 있던가.


무서운 전염병이 한국 방역망을 펑 뚫고 들어오게 한 책임, 제대로 환자를 관리 못해 전국적으로 퍼뜨려 전 국민을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히게 한 정부는 왜 국민들을 이렇게 홀대하는 가.

한국 보건복지부 중앙메르스 관리대책본부는 한국시간 18일 현재 사망 23명, 확진자 총 165명, 격리자 6,729명이라 한다. 장례식커녕 비닐에 겹겹이 쌓인 채 격리병실에 방치되었다가 24시간 내 화장되어 가족에게 유골로 돌아간 사망자들의 한을 풀어주기에는 1억 원, 그이상의 보상금도 억울하다.

한국사회 각 분야에 만연한 ‘모럴 해저드’ 대신 더 많은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와 올바른 서민의식을 지닌 자들이 나와야 한다. 두어 달이면 메르스는 물러가겠지만 이번 사태로 높은 도덕성, 사회에 대한 책임이란 것에 대해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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