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스크와 발 족쇄, 그리고 개 목줄 패션

2015-06-13 (토)
크게 작게
이태상(전 언론인)

최근 발생한 코메르스(코리안 메르스) 사태 이전부터 한국에선 마스크가 새로운 패션으로 자리 잡아 흰색, 검은색, 녹색에 파란색까지 어울린 마스크들의 행진-그 기이한 풍경을 외국 언론은 놓치지 않았다. 허핑톤 포스트는 이런 대한민국의 모습을 화보로 엮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런 것은 서양 사람들의 행태에 비한다면 양반이다. 비근한 예로 동양인이 개고기를 먹는다고 야만인이라고 흉보면서도 서양인들은 예수의 상징이란 양의 양고기를 즐겨 먹는다. 내가 보기엔 ‘고기는 고기’일 뿐이다. 소고기, 돼지고기, 물고기, 예수의 살과 피를 섞은 사람고기 등등 가릴 것 없이...


개가 맹인안내견, 반려건, 애완견, 폭발물 탐지견, 범인이나 실종자 탐색견, 사냥개, 군견과 경찰견 등등 인류에게 지대한 공헌을 해오고 있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지만, 야생의 이리나 늑대가 길들여져 인간의 충복으로 구차한 목숨을 부지해오고 있는, 마치 ‘거세당한 내시’ 같은 신세가 몹시 딱하고 안쓰럽다.

이것이 어디 개뿐인가. 개처럼 살고 있는 개와 같은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서양에서 남자들이 개 목줄 매듯이 넥타이를 매기 시작하면서 제가 속한 조직과 기관에 구속되어 숨통 막히는 신앙이다, 이념이다, 사상이다 온갖 허깨비 같은 주의 주장과 신앙심이다 애국심이다 애사심이다 하는 속박에 묶인 노예로 전락하지 않았는가.

어디 그뿐인가. 여성의 경우엔 더 혹독한 족쇄를 발에 채워오고 있지 않나. 마치 가축처럼 가정이란 울타리 안에 가둬두기 위해 옛날 중국에서 여자 아이들의 발이 자라지 못하도록 어려서부터 꽁꽁 묶어놓았듯이 서양에서는 남성의 성노리개 패션 명품이란 마네킹으로 남성에게 예속화시켜오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얼마 전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 셰릴 샌드버그의 남편 장례식에 참석한 1,700여 명의 조문객 가운데 넥타이를 맨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하버드 대학출신으로 미국 재무장관 비서실, 구글, 페이스북 성공신화를 써온 그녀에게 남편이 러닝머신에서 쓰러져 숨지자 “데이브가 생전에 넥타이를 증오했기 때문에...” 하며 넥타이 없는 의식을 치르게 되었다고 한다.(데이브는 그녀의 남편이자 서베이몽키 CEO 데이비드 골드버그를 지칭한 것이다.)

2006년 뉴욕에서 치러진 백남준의 장례식에선 존 레논의 부인 오노 요코를 비롯한 400명의 참석자들이 옆자리에 앉은 조문객의 넥타이를 자르는 깜짝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는 60년대 백남준이 독일에서 작품 발표를 하다 갑자기 청중석에 앉아 있던 그의 스승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잘라 스승을 모독한 것이 아니라 ‘자유인(Free Spirit)’의 새로운 시대를 연 역사적인 퍼포먼스를 연상시켜 떠올렸다.

이제 발을 묶는 족쇄나 넥타이 등에 더 이상 구속되지 말고 자유인이 되어 여성은 하이힐을 하이킥으로 걷어차 버리고, 남성은 넥타이를 벗어버리고 본연으로 돌아가 진정으로 사람답게 살아 볼 일 아닌가. 더 이상 개와 같이 살지 말고 말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