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프렌디(Friendy)”

2015-06-1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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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창흠(논설위원)

엄부자모(嚴父慈母).
엄격한 아버지와 사랑이 깊은 어머니. 아버지는 자식들을 엄격히 다루고, 어머니는 깊은 사랑으로 보살펴야 함을 이르는 말이다.

그랬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엄했다. 말씀도 별로 없었다. 가족들이 둘러앉은 밥상은 늘 고요했다. 이야기를 나누면 “복 달아난다. 밥이나 먹어라” 한 말씀하신다. 그저 밥만 열심히 먹어야하는 이유였다. 숟가락 닿는 소리. 음식 씹는 소리만 들렸다. 그래서 밥을 빨리 먹는 습관이 생겼다. 어쩌다 맛있는 반찬이 놓여도 선뜻 젓가락질을 하지 못했다. 먼저 아버지가 잡수시면 그제야 한번 쯤 젓가락질을 해야 했다. 자식들에겐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도 건넨 적이 없다.


아버지에게 다가가기가 쉽지 않았다. 오히려 아버지를 닮지 않겠다고 다짐할 정도였다. 어른이 돼 아버지가 되면 화기애애한 보금자리를 만들겠다고 생각 했었다. 그러다 아버지가 된 후에야 깨달았다. 아버지를 닮은 모습이 있다는 것을. 엄한 아버지의 그 모습이 자식사랑이었다는 것을. 돌아가신 후에야 비로소 보고 싶어서 뒤늦은 후회도 했다. 그러면서 좋은 아버지로 산다는 것이 쉽지 않음도 알 수 있었다.

남자로 태어나 아버지가 된다는 것. 그건 그리 어렵지 않다. 누구나 될 수 있다. 자식을 낳는 것으로 아버지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한다는 것. 그건 그리 쉽지 않다. 정말 힘들다. 아버지 노릇을 배우고 연습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어린 시절 보아온 익숙한 아버지의 모습을 교본으로 삼는다. 그러면서 어설프게 아버지 노릇을 하고 있을 뿐이다.

아버지 노릇은 어영부영 할 일이 아니다. 아버지 역할은 가정 행복의 척도다. 자녀의 인생관과 삶의 자세도 결정된다. 아버지의 인생관, 철학, 삶의 태도 등이 자녀 성장에 영향을 끼친다. 자녀들은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고 자라기 때문이다. 그만큼 아버지의 노릇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오늘날 아버지들은 스스로의 중요성을 안다. 누구나 좋은 아버지가 되길 원한다. 그렇지만 좋은 아버지는 저절로 되지 않는다. 노력하고 실천해야 한다. 말이나 생각만으론 될 수도 없다. 그렇다면 그 누가 좋은 아버지가 되지 못하겠는가! 결국, 생각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 그렇게 좋은 아버지가 되는 길. 참으로 가치 있는 일이다. 이 세상 최고의 기쁨이 아닌가 싶다.

자녀들이 좋아하는 아버지란 자녀들을 좋아하는 아버지다. 자녀를 기쁘게 하는 것. 그 것이 좋은 아버지 노릇의 첫걸음이다. 자녀들이 좋은 아버지로 생각하고 만족하는 아버지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가족사랑은 시간으로 쌓아올린 성과 같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의 양과 질로 쌓아 올려야 한다. 단순하게 함께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아들하고는 함께 활동해야 한다. 딸하고는 함께 깊은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그래야 사랑의 농도가 짙어진다. 행복의 성도 튼튼하게 쌓아 올릴 수 있다. 결국, 자식들과 함께 가족 사랑의 성을 쌓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 그런 아버지가 바로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한자인 친(親)자는 설립(立)+나무목(木)+볼견(見)이 합쳐진 글자다. 그래서 어버이를 일컫는 글자로도 쓰인다.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염려하면서 마을입구 나무에 올라 먼 길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모습을 형상하는 글자이기 때문이다. 친(親)자는 또 ‘친하다. 서로 가깝게 지내다’라는 뜻도 함께 지니고 있다. 부모와 자식 사이는 친해야 한다는 세상의 이치를 뜻하니 그 속뜻이 크다. 부모자식 사이에 친함을 우선으로 여겼던 부자유친(父子有親)에 다름 아니다.

프렌디(Friendy). 친구(Friend)와 아빠(Daddy)의 합성어다. 친구 같은 아빠란 뜻이다. 좋은 아버지는 자녀의 눈높이에서 자녀와 소통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렇게 친구 같은 아빠가 좋은 아버지다.

아버지들이여! “당신은 좋은 아버지입니까, 친구 같은 아빠입니까?”
오는 21일은 아버지의 날. ‘아버지가 변하면 가정이 행복해진다’는 명언은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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