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만나는 사람들

2015-06-1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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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영<병원근무>

“앞으로 열 대 여섯 시간 내 곁에 앉은 사람이 소중한 것은 그로인해 내가 편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한국을 자주 방문하는 아는 분이 그런 이야기를 한다. 결국 열 네 시간의 편함을 위하여서는 내 옆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그의 논리는 삶에서 얻은 경험과 지혜다.

설렘으로 계획된 여행이 망가져 버릴 수도 있다.
오래전이다. 여섯 시간 정도 비행기를 타고 가야 했었는데 지금 여행했던 장소는 생각이 안 나지만 그때 내 곁에 앉았던 사람으로 불쾌했던 경험은 도무지 잊히지 않는다. 굳이 따져보면 그가 나쁜 사람이어서 내게 해를 끼친 것은 없다. 이상한 냄새에 코를 막고 싶은 아시아계의 중년남자인데 왜소한 체격이어서 신발을 벗고 무릎을 올리고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쉴 새 없이 손가락으로 양말까지 벗은 맨발가락을 주무르다 콧구멍을 후비다가 무엇인가를 까먹기도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견딜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입속에서 혓바닥을 한번 돌렸다가 입천장과 아래위 입술을 동시에 움직이는 것 같았는데 그 요란한 소리는 신기할 정도여서 나는 후에 혼자 그 소리를 내보려고 시도해본 적이 있을 정도였는데 일부러라도 그건 불가능했다.

비행기 안의 어느 소음위에 실려 오는 그 소리는 옆에 앉은 나만이 귀가 뚫린 것이 아니어서 앞뒤에 앉은 승객들도 견디다 못해 이따금 이 사람을 전혀 다정하지 않은 눈빛으로 바라보며 눈치를 주었는데 상관하지 않는 듯했다.

그리고 여섯 시간동안 다섯 번은 일어나야 했던 이 사람의 외출. 갈 곳은 꼭 한 군데 뿐인 것을… 전립선에 문제가 있구나, 돌팔이 진단까지 하면서 견딘 그 시간들과 그에게서 나던 그 냄새와 공해수준의 소음은 지금까지 몸이 움츠려지게 한다.
우리는 살면서 길게 짧게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살고 있다. 잠깐씩 만나지만 평생을 좋은 마음으로 지내는 사람도 있고 지겨워 지겨워하며 한 지붕아래서 매일매일 평생을 눈 흘기며 사는 상대도 있을 것이다.

나는 병원에서 일하며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병원 침대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아무리 평소에 건강을 자랑하고 명품만 걸치는 대단한 삶을 살았을지라도 그 당장만큼은 패션을 전혀 고려치 않은 허름한 환자복을 몸에 걸치고 의사의 지시에 따라야하는 환자일 뿐이다.

똑같은 환경이라도 견딜만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견딜 수 없다고 한탄하고 푸념하는 사람도 있다. 결과는 똑같다.얼마 전 세상을 떠나신 한 분은 오랜 암 투병을 하면서 힘들면 중얼중얼 찬송가를 부르며 견디는데 워낙 웃는 얼굴이 본바탕인지 모르지만 잠들어 있을 때 외에는 환한 미소와 함께 늘 괜찮아요, 좋아요 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다.

그분 이름은 잊었는데 그 미소 가득한 얼굴은 여전히 남아있다. 생애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이 분명한 이분과는 많은 대화를 나눌 수도 없었지만 그 모습만으로도 순간의 귀중함과 삶의 가치를 배우게 되는 소중함에 시간을 내어 자주 방문하였었다.
비행기 옆 좌석의 그 남자는 본인도 모르게 고약한 매연을 내뿜었을 것이다. 누가 탓할 것인가.

그렇듯 마지막 병석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만나는 사람에게 즐거움의 향기를 뿌리고 갈 수 있다면 이 한 세상 잘 살고 가는 흔적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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