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속담 모아 만든 작품

2015-06-1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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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숙<전직공립학교 교사>

약 1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학교에 한국 학생들만 모아서 두 반을 가르칠 수가 있었다. 그 때 속담을 되도록이면 많이 써서 글을 마음대로 지어보라고 했더니 하늘이라는 여학생이 다음과 같이 우수한 글을 지었다. 지금까지 읽고 또 읽어도 중학교 1년이나 2년생의 글로 보기에는 너무 조숙하다.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신념으로 부지런히 모아 둔 통장 두 개,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 되냐’는 말을 애써 무시하며 열심히 꾸민 얼굴과 몸매, 이 두 가지는 나의 전 재산이야. 하지만 내 나이 이미 스물여덟 살. 아! 비참. 근데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더니 나에게 선볼 자리를 만들어주신 분이 계셨어. 난 여자답게 몇 번 튕기다가 만나기로 약속을 했지. 드디어 약속의 시간! 얌전히 차려 입고 다소곳이 앉아 있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세상에! 초등학교 동창 상민이가 아니야!
’등잔 밑이 어둡다’고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몰랐다니……. 어찌나 반갑던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기를 했어. 그러기를 몇 번 반복하다가 상민이가 글쎄 결혼을 하자고 그러지 뭐야! ‘얌전한 강아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순해빠진 상민이 입에서 결혼 이야기가 다 나오고 내가 예쁘긴 예쁜 모양이야. 난 한마디로 거절했어.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법인데 내 아기가 상민이 같이 못 생긴 얼굴이면 안 되잖아? 안 그래?

상민이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면서 끝까지 쫓아왔어. 나 참 ‘못 올라갈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말을 못 들어 봤던 모양이지? 어쨌거나 난 나무가 아니니까... 그런데 이게 웬일이야! 내 남자인줄만 알았던 상민이가 다른 여자한테 장가를 간다나! 어! 이게 아니잖아? 이건 완전히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어 버렸어. 얼마나 멍청한 여자면 상민이에게 시집을 갈까? 보나마나 ‘우물 안 개구리’겠지 뭐. 상민이가 남자의 전부인지 아는……. 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했어. 바보같이. 그래 부딪쳐 보자! 상민이에게 생각해보니 네가 다시 좋아졌다고 말하는 거야! 근데 웬일!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고 식당 개 삼년이면 라면을 끓인다더니 요개 나를 흉내 내지 뭐야! “못 올라갈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그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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