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일류병 환자

2015-06-1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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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지난 6월초 버지니아주 토마스 제퍼슨 과학고 졸업반인 새라 김양이 하버드와 스탠포드에 동시 입학 허가를 받았고 코넬대, MIT 등에서도 합격통지서를 받았다는 뉴스가 나왔다. 워싱턴 DC 중앙일보에서 처음 보도된 후 한국의 언론사들이 일제히 크게 다루고 CBS 라디오 인터뷰까지 한 김양은 1, 2학년은 스탠포드에서 다니고 다음 3, 4학년은 하버드에 다닌 뒤 최종학교를 선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인여학생의 장한 소식에 한국 언론과 한국민들은 ‘천재소녀’라 극찬했고 미주한인들도 “역시 한국인의 두뇌는 우수해”, “미국에서 태어난 애들도 가기 힘든 아이비리그를 가다니훌륭하네” 하며 아낌없이 축하해 주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거짓이란다. 김양을 둘러싼 명문대학들의 스카웃전으로 이어졌다는 MIT 제출 논문은 2005년 다른 논문을 표절한 것으로 밝혀졌고 김양이 자신의 멘토라고 말한 허버드대 조셉 해리스 교수와 스탠포드대 제이컵 폭스 교수는 “새라 김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 “내가 그녀의 멘토였던 적이 없다”고 각각 밝혔다.


하버드와 스탠포드 해당 대학측은 김양의 합격 통지서가 위조 됐고 동시 수학프로그램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공식부인 했다. 이 ‘Big Lie Scandal’의 최초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 와 유학하면서 부모에게 효도하려면 성적이 최고를 유지하고 일류 명문대학에 가야한다는 압박감에서 비롯되었을까. 자신을 속이고 부모를 속이고 자신이 만든 허구세계를 진실이라 믿어버렸기에 대학에서 온 이메일, 합격증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조작하게 만들었을까.
천재소녀 등장에 한국민과 한국 언론이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일제히 한쪽으로 쏠려버린 것은 우리들의 의식 속에 일류병, 학벌 지상주의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일등 인생의 제일단계가 명문대이고 명문대 졸업으로 취직이나 승진 등 앞으로의 인생을 보장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미국의 한인들도 자녀들에게 “무조건 하버드다! ”, “나도 하버드 간 아들 한번 둬보자” 는 등 공부를 좀 한다하는 자식들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아이비리그 대학뿐 아니라 미국 대학의 커리큐럼, 자녀가 전공하는 과목에 대해 잘 모르면서 무조건 명문대 이름부터 선호한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는 아이비 리그 나와도 좋은 직장에 취직한다는 보장도 없는데 말이다.

지난 2007년에는 성곡미술관 큐레이터 신정아의 가짜 예일대 미술사 박사 학위증으로 인해 전국에 학위 검증 바람이 불었었다. 신정아는 정치인의 비호아래 롤러코스터 성공의 길을 달리다가 거짓이 탄로 나면서 영등포 구치소에서 형을 살았다. 개인적 양심과 사회전체의 양심이 마비된 이 사건이 막 내린지 10년이 안된 올해, 신정아는 조영남 전시회 큐레이터로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죄의식이 없는 것, 자신은 충분히 벌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일대학교는 동국대와의 사이에 벌어진 신정아 졸업증명서 팩스진위 법정사건으로 인해 2007년부터 졸업증명 절차를 강화하였다고 한다.

이같은 일들로 인해 최고 아이비리그인 하버드, 스탠포드, 예일대에 ‘한국인은 일류병 환자’라는 인식이 박혔다. 이런 일들이 한인뿐 아니라 중국, 인도 등 교육열이 높은 어느 커뮤니티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대학 갈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아무래도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SAT 점수 한 점에도 희비가 오가는 이들에게 각종 경연대회 수상경력과 경험이 과장된 것으로 보이지 않을까, 에세이를 다른 사람이 써준 것이라 오해하고 불이익을 당하진 않을까 하는 그런 염려 말이다. 이번 일이 한 여고생의 해프닝이었다고 지나쳐 가기에는 우리 모두 반성할 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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