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마운 인생

2015-06-0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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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수필가>

미국에 살면서 한 번 쯤은 누군가 “왜 미국에서 사는가”를 물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서슴지 않고 볼거리, 먹거리 그리고 자유로워서 미국이 좋다고 했다.

그렇지만 처음 이민 와서는 제일 먼저 느낀 것이 결혼하면 어른들 말씀 같이 장님, 귀머거리, 벙어리 3년을 해야 한다고 했듯이 바로 그 짝이었다. 그러다 한국 신문을 보자 눈이 번쩍 뜨이는 기쁨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어느덧 세월이 지난 지금, 지나온 과거를 뒤돌아보면서 새삼 고마움을 느끼는 것은 신문을 읽고 방송을 들으며 고마운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

만약 내가 한국에서 살았더라면 이렇게까지 글에 대한 집착이나 애정을 갖지 못했을 것이며, 언어의 대한 귀중함은 물론 나라 사랑을 느끼지도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민초기에 처음으로 한국 신문을 보면서 언어의 중요성은 물론 갈급한 영혼의 물 한 잔 같은 문예란에 내 인생을 걸은 것은 사실이었다. 아니 살아 갈 이유를 찾은 듯이 정신없이 문학에 심취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의 하루 일정은 일과 글 읽기에 전념했고, 그로 말미암아 힘든 것도 모르고, 세월이 어떻게 흘러가는 지도 모르며 열심히 살았다. 그러다 늦은 나이에 그림까지 시작한 것이 개인전을 한국 인사동에서, 뉴욕에서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나 자신의 기특한 마음과 자랑겸 연락하기를 유튜브에 들어가서 내 이름에 화가라고 클릭해 보라고 했더니 “ 다 늙은 나이에 웬 전시를 “ 해서 새삼 내 나이를 생각해 보았다.

하긴 그동안 글을 쓰면서 알게 모르게, 이런 저런 지적에 충고, 먹고 살기 바쁜데 웬 책을, 해서 애 써 출판한 책을 남에게 건네주기도 민망해 한 적도 있다.
누군가 말하기를 가난과 사랑은 숨길 수가 없다고, 글을 쓴다고 너무 표 나게 잘난 척하고 티를 낸 것은 아닌지 모르나 내 흥에 겨워 열심히 배우고 즐긴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인생은 어차피 남을 위한 인생이 아니고, 완성은 없고 미완성이래도 우선 저지르고 보자는 마음으로 달려간 것이 지나놓고 보니 그런대로 즐겁게 잘살았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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