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집에 없는 남편’이 제일 좋은 남편이라고?

2015-06-0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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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내 (컬럼비아 의대 임상조교수)

다음은 며칠 전 오피니언 지면에서 본 한 칼럼 내용 중 일부다.
“남편이 은퇴를 하면, 더 이상 만날 사람도 없고, 그리고 참석해야 할 모임도 없게 되니까, 남편은 매일 아내 뒤만 따라다니면서 아내를 귀찮게 군다. 집에 있는 남편에게 매일 세끼 밥을 해주느라고 아내의 건강은 나빠진다.

하지만 3년 후면 아내의 건강이 회복된다. 50대 이상의 여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남편은 씩씩한 남편도 아니고, 잘 생긴 남편도 아닌, 바로 ‘집에 없는 남편’이다. 하지만 여자만 고통을 받을까? 아니다. 60대 한 남성은, 은퇴를 하고 난 후, 집에서 사는 게 마치 바늘방석에 앉아있는 것처럼 매일 편치가 않다고 했다.” 이는 재치 있게 아주 잘 써진 글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은퇴가 정말 고통을 안겨다 줄만큼 괴로운 걸까?


나는 은퇴를 한 지가 1년이 넘었다. 지금 나의 삶은 아주 편해서 좋다. 아내 뒤를 결코 따라 다니지 않는다. 온 종일 방에 들어앉아 책을 읽는다. 책 읽기에 바빠 아내 뒤를 따라 다니면서 잔소리 할 시간이 없다. 아내는 친구들하고 자주 놀러 다니고, 주말이면 교회에 가고, 교인들이 아파 입원하면 아내는 병문안을 다니고 있다.

아내 친구들의 남편이 이따금 죽어가고 있다. 친구들이 아내한테 “남편이 죽고 나니까, 남편이 살아있었을 때 왜 더 잘 대해 주지 못했을까 하고 후회를 많이 하고 있단다. ”당신 남편이 살아 있다는 것은 행복이야. 남편이 살아 있을 때 잘 대해 주어, 그래야 당신 남편이 죽고 난 후, 네가 덜 후회하게 될 거야”라고 말해 주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하여튼 아내는 나를 지극 정성으로 잘 대해주고 있다.

나도 아내에게 집안 청소가 건강에 좋으니까 집안청소를 될수록 많이 하라고 권했다. 그리고 나니 집안이 깨끗하다. 그렇다고 내가 혼자만 편히 있을 건가? 나도 앞마당 뒷마당의 풀을 깎고 거름을 주고, 뒷마당에 조그만 농토를 만들어 농사를 지으면서 나와 아내의 건강을 보살피고 있다. 아내는 내가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고 그리고 아내는 남편을 위해 밥 해주는 맛으로 삶을 즐기고 있다.

나는 아내가 지어준 밥을 맛있게 먹음으로 해서 노후의 인생을 만끽하고 있다. 은퇴는 나와 나의 아내에게 최고의 휴식이고, 편안함이고, 행복이다.

어느 날 아내가 나한테 이런 농담을 한다. 어떤 여자가 동창회에 가서 밤늦게 들어왔다. 남편이 “왜 늦게 왔어?”하고 추궁하니까, 그의 아내가 화난 얼굴로 “동창회에 가서 보니까 당신만 아직 살아있단 말이야.”하고 투덜대더라는 것이다.

‘집에 없는 남편’보다는 아예 ‘죽어버린 남편’이 더 낫다는 말인 모양이다. 설마 나더러 빨리 죽어달라는 농담은 아니겠지 하고 불안해하면서도 편안한 척 웃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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