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51년 만에 찾아 뵌 나영균 교수

2015-05-3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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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방문 중 스승의 날을 일주일 앞두고 51년 만에 나영균 교수를 찾아뵈었다. ‘영어영문학을 올바로 하려면 우리 국어 국사부터 먼저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하신 금언이 평생 간직해온 나의 좌우명이 되었는데 이번 뵈었을 때 넌지시 던지신 화두는 ‘남을 먼저 배려하는 풍토와 정서가 전혀 안 돼 있다”는 게 문제라는 말씀이었다.

내가 나영균 교수의 강의를 처음 들은 것은 1962년. 5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당시 선생님의 연세는 서른 넷, 내 나이 한창 패기에 넘치던 스물 둘 될 때였다. 영문학 소설 강좌였는데 미국여성이 아닌 한국인 중에서도 젊은 여자교수가 완벽한 영국 퀸즈 발음에다가 섬세하고 깔끔한 명 강의에 완전 매료되었던 것이다.

1949년 김활란 박사가 하버드 영문학과에 장학생으로 보내게 될 수준의 실력이셨다. 6.25동란이 발발하면서 유학의 꿈을 접게 되지만 1964년도인가 국립극장에서 내한한 영국 셰익스피어 학회 교수들의 발표회에 특유의 음색으로 즉석 통역을 하시던 자태는 지금도 눈에 선하다. 숨소리 하나 없는 장내를 매료시킨 당시를 5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상하면 가슴이 설렌다.
어느 해인가, 자택을 방문 했을 때 손수 빵을 구워주시던 선생님의 제자에 대한 애틋한 ‘친절과 사랑’ 그 무엇으로 스승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으랴만 금년으로 만 86세가 되시고 내 나이 75세, 반세기가 지나는 동안 문안인사도 못 올렸던 무례한 나를 흔쾌히 만나 주시겠다고 이메일 답신을 주셨을 때의 기쁨을 어찌 졸필로 표현할 수 있을까?


5월 11일 12시 밀레니엄 힐튼, 51년 만에 뵌 선생님의 모습은 사진에서 보듯이 놀랍게도 옛날 그대로이시다 라는 탄성이 입가에 터져 나올 정도였다. 동석한 아내가 여쭙자, ‘나이를 생각할 겨를이 없는 빠듯한 생활의 연속’ 지금껏 나이 계산을 모르고 지낸다고 하셨다.

서글픈 현실은 인사동에 책사가 사라졌고 심지어는 이대 사거리에도 책사를 찾아 볼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는 탄식어린 말씀이었다. ‘아이폰에 미쳐 책을 잡지 않는 세태로 전락했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과 자세가 사라진지 오래이다’라는 잔잔하지만 또렷한 어조의 지적은 동석한 사람들을 숙연케 하셨다.

“선생님,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계시고 또 저를 만나주실 수 있어 큰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나도 고맙지. 이렇게 찾아 주니까.” 눈물이 핑 돌았다. 선생님은 당신이 직접 그린 ‘매화 그림’을 족자로 만들어 놓았는데 이 귀한 작품을 선물로 갖고 나오셨고 정겹게 건네 주셨다. 다음에 나오면 우리 농장에 함께 가자는 말씀도 곁들이시고…


전태원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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