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향기로운 사람들

2015-05-2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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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희봉(사업가/ 보히스)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아름다운 꽃향기가 나를 매혹시킨다.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져 겨울에는 잠자더니 봄이 되어 파랗게 솟아나 꽃을 피우고 있다. 푸른 잎사귀에 대롱대롱 하얗게 피어있는 꽃, ‘Lily of the Valley’에서 나는 향기가 어쩌면 이렇게도 아름다운지, 이 꽃을 나에게 준 여인이 생각난다.

오래전에 옆 가게인 기프트 샵에 들어갔는데 조그만 꽃병에 이 꽃이 다소곳이 담겨 있어 나는 이 꽃을 너무 좋아한다고 했더니 가게 주인이 이 꽃을 집에서 가져온 게 있는데 나에게 주고 싶다고 하면서 건네주었다. 나는 지금도 꽃향기만큼 아름다운 향기를 지닌 그 여인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남부 뉴저지근방에서 작은 규모의 생선전문 식당을 17년 동안 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을 만나 왔다. 그 많은 사람 중에 나에게 lily of the valley를 줬던 그 여인처럼 생각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꽤 있다. 75세가 넘은 네 명의 여자친구들, 30여년을 매주 한번 씩 영화를 보고 우리 식당(바로 옆에는 영화관이 있음)에 들렸던 여인 등이다.

어느 비오는 날, 우산을 들고 오는데 장미꽃이 우산 끝에 온통 달려 있어 얼마나 예쁘던지... 너무 예쁘다고 했더니 훗날 그가 어떻게 내 생일을 기억했는지 생일날 내게 장미꽃 우산을 선물했다. 지금도 이 장미꽃 우산을 들 때마다 사람들로부터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10여 년 전 정말 뜻밖에 나를 황홀하게 했던 사람도 있다. 007영화의 주인공 제임스 본드 숀 코네리가 조그마한 우리 식당에 온 것이다. 그 때 나이 70세인데도 여전히 늘씬하고 멋진 scottish 발음의 제임스 본드였다.

손님들도 한참동안 그를 바라보았다. 남편 친구가 숀 코네리가 내 어깨에 손을 얹고 있는 사진을 보고 내가 ‘본드 걸(Bond Girl)’이 됐다고 하여 한참 웃었다. 17년을 한결같이 내 식당을 찾아주는 부부 Helene & Richard도 이제는 너무나 좋은 친구가 되었다. 꽃향기 못지않게 인간사회에도 향기로운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70을 바라보면서 남은 생도 그처럼 아름답게 기억되는 향기로운 사람으로 살고 싶은 소망을 가져본다. 오늘따라 유난히 lily of the valley의 향기가 진하게 풍겨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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