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유승준, 그만 받아줄 때

2015-05-2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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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내일모레 40이 되는 유승준이 19일 인터넷 방송에서 무릎을 꿇고 흐느끼며 “시간을 돌이킬 수 있다면 두 번 생각하지 않고 군대를 가겠다” , “아이들과 함께 떳떳하게 한국 땅을 밟고 싶다”며 그만 용서해 달라고 한다.

90년대 한국최고의 가수 유승준은 2002년 입대 3개월을 앞두고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면서 병역대상에서 제외됐다. 병무청은 출입국관리법 11조 위반 혐의로 유승준을 영구 입국금지대상으로 지정했다.


군대에 간다고 해놓고 안가고 미국 시민권을 받은 것이 전 국민의 공분을 사며 한국에서 추방되다시피 한 그는 스물다섯 아름다운 청년의 모습은 어느덧 사라지고 만39세 중년 사내가 되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19일 전국 19세 이상 5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 결과 국민 66.2%가 가수 유승준 입국 허용 반대라고 한다. 법무부와 병무청은 제고의 여지가 없다고 한다.

누리꾼들은 유승준을 스티브 유라고 부르면서 나라를 버렸다, 용서가 안 된다, 국민 우롱이다, 배신자라며 질타한다. 그러나 댓글로 상처 많이 받았겠다, 정치인들·재벌가 병역비리자 많은데 왜 유승준만 더 가혹하냐, 용서할 때 되었다는 의견도 있다.

미국에 살면서 시민권자 자녀를 둔 부모 입장에서 유승준의 처지가 딱하고 안쓰럽다. 고개 조아리는 동영상은 더더욱 보고 싶지 않다.대한민국 헌법 제39조에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고 되어있다. 휴전 중인 나라는 말 그대로 언제라도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 징병제 국가에서 병역 기피자를 대하는 국민의 눈은 싸늘하다. 내 아들은 전방에서 고생하는데 너는 왜 편하게 사느냐는 괘씸죄가 추가된다.

이런 국민 정서가 미국 시민권자인 유승준에게 가혹하게 내려졌다. 나라를 망하게 한 친일파나 국민을 울린 독재자도 시간이 지나면 용서하고 위화감을 조성한 재벌가 자녀나 고위직 정치인 자제의 병역기피는 쉬쉬 하고 덮어가는 마당이다.

우리는 더욱 잘 살기 위해서, 자녀교육을 위해서 미국을 택한 것만은 아니다. 부모 자녀가 국적이 다르면 여러모로 불편해서, 먹고 살려니 편의상, 복지 혜택을 받기 위해서 등등 여러 이유로 미국시민권을 받았다. 그런데 왜 나라를 버렸다고 하는가, 왜 미국에서 잘 먹고 잘 살지, 한국은 다시 쳐다보지도 말라고 하는가. 우리 모두가 미국에서 잘 먹고 잘 살지 않는다. 먹고 살기 위해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유승준이 잘못하긴 했다. 군대를 간다고 했으면 가야 했고 미국에 왔으면 한국 쪽은 쳐다보지도 말았어야 했다. 그런데 그가 거짓말을 한 것, 그것은 도덕적 문제이지 결코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다. 25세 한창 나이에 누구나 잘못된 선택도 하고 실수도 하며 타의든 본의든 거짓말 안 해 본 사람이 없을 것이다.


유승준은 미국에서 결혼하여 아이 둘 낳은 아버지가 되었고 현재 성룡이 이끄는 소속사 가수와 배우로 중국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다. 그에게 한국에 대한 그리움까지 나무랄 수는 없다. 유승준을 비아냥대는 누리꾼은 당신의 이름은 스티브 유라고 하는데 그렇다, 우리는 미국에 살기위해 내 아들 딸 이름을 헬렌 박, 제임스 리, 찰리 정으로 지었다.

안 그래도 한국의 속인주의로 부모 중 한 사람이 한국 국적자일 때 미국에서 태어난 자녀들은 국적을 이중으로 갖는다. 만18세 되는 해 3월말까지 국적이탈 신고기간을 놓쳐 곤란을 겪는 일들이 많다. 원어민교사, 장기유학, 한국지사 근무를 가려다가 자신이 선천적 복수국적자라는 것을 알게 된 2세들은 자신도 모르게 병역기피 범이 되어버린다. 아직 이 불합리한 규정은 해결되지 않았다.

미국에 사는 한국계 아메리칸에게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넓은 포용력으로 한국민들이 유승준을 받아줄 때도 된 것 같다. 어떤 벌이라도 치르게 하고 말이다. 벌써 13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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