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30-20-30

2015-05-1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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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인 <대학강사>

옛날에는 20년 공부하고 30년 일하다가 20년 은퇴생활로 가던 것이 지금은 공부 30년 그리고 일은 20년 하다가 30년 쉬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교육은 길어지고 혼기는 늦어지고 경제는 나빠지고 수명은 길어지고, 이 숫자가 단순히 씁쓸한 현실을 빙자한다기보다는 사회문제의 원인을 가장 간단히 나타낸 도식이 아닌가 싶다.

고등학교까지가 의무교육 있었던 70년 초와 달리 지금은 대학졸업장이 중산층의 삶을 보장한다고 하여 세계에서 가장 비싼 등록금을 지불하느라 빚을 떠안으면서라도 대학교육을 시키다보니 실제로 대학등록금으로 인한 빚의 버블에 시달리고 있다.
여기서 신기한 현상은 교육과 경제가 반드시 같이 가고 있지 않아 경제가 나쁠수록 교육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제는 누구나 대학을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그 학벌을 가지고도 편안히 직장을 못 찾는 일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러다보니 대학은 결국 대학원을 가기 위한 과정이 되어버리면서 무엇을 배우는 가보다는 얼마나 좋은 성적을 받는가가 중요해져 college is all about grade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되는 판이다.

그런 결과 언제나 내가 이끌어가는 인생이 시작될지 걸어도 걸어도 앞이 안 보이는 캄캄한 동굴을 지나는 아이들…

언젠가 모교에 찾아갔더니 교수님께서 인문 사회과학이 죽은 곳이 무슨 대학이냐며 한탄하셨다. 이 모든 변화에 왜 학교만 자신의 제도가 옳다고 원래의 모습을 고집할까. 한창때의 아이들을 지나치게 오래 학교에 붙잡아둔다는 미안함도 없고 딱히 투자 가치가 있는지 확실치도 않은 곳에 계속 교육비를 쏟아 붓는 부모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없고, 대학에서 공부하는 인문사회 과목들은, 물론 전공으로 공부하고 싶은 학생들도 있지만, 많은 경우 그 진미를 느끼기에 아이들은 너무 어리고 바쁘기도 하다.

나는 나이 들어 다시 공부하는 늦깎이 학생들을 간간히 만나는데 그 분들이 정말 공부에 열심이면서 보람 있는 시간을 즐기는 것을 본다. 학생시절과는 달리 자기의 지나온 삶이 스승이 되어 인간심리, 사회현상, 그리고 철학을 이해하며 진정한 사색이라는 것을 하면서 비판적 시각도 생기는 것을 본다.

이것을 보면 대학은 교양과목을 선택으로 만들고 continuing education 으로도 오픈하여 일반인과 함께 강의를 듣게 하고 학생들을 더 많은 시간을 전공에 할애하여 석사과정을 학부에서 모두 마치게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학점이라는 제도로 성적만 받기 바쁘다면 그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시간과 돈의 투자가 되겠는가.

공부가 길어져 혼기가 늦어지고 일하는 기간이 짧다면 자녀교육 뒷바라지를 한창 해야 할 때에 이미 은퇴를 생각해야 한다는 결론이 되니 자연히 위험을 감수하는 한탕주의가 합리화가 되어버린다. 돌아보면 한국의 419세대 638세대가 민주주의 항쟁에 앞장을 섰지만 그들이 기성세대가 되었을 때 부패가 없어지고 그들의 꿈이 현실이 되지는 않았다. 노후는커녕 현실이 아직도 암담한데 사람들이 그 자리에 가면 다 그래가 아니고 실질성 없는 제도와 환경이 그들로 하여금 즐겁게 일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좋게는 교육이 그만큼 중요해졌다 그리고 경쟁사회의 부작용으로 학벌하다라는 것과 학벌과 스펙이 그만큼 중요해지다보니 남보다 좀 더 나은 자신을 보이기위해서는 시간이 더 든다는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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