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유비무환(有備無患)

2015-05-18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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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창흠(논설위원)

얼마 전에 대형 한식당이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전 종업원 임금 미지급 소송이 주된 이유다. 소송에는 한인 8명과 타 인종 3명의 전 종업원들이 합세했다. 최저임금과 오버타임 미지급 등을 주장했다. 법원은 무려 267만 여 달러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업주는 당혹스러웠다. 법정에서 충분히 반론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식당 매니저도 임금 미지급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업주는 항소했다. 대법원까지 가서라도 옳고 그름을 가리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파산보호 신청을 할 수밖에 없었다. 법원판결로 은행의 비즈니스 계좌가 동결됐다. 실질적인 영업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결국 업주는 망하고, 종업원도 일자리를 잃게 됐다.


한인사회의 업주와 종업원의 노동분쟁은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식당이 제일 심하다. 네일, 세탁, 청과, 수산, 식품업계 등도 마찬가지다. 한인들의 주력업종에 예외란 없다. 그나마 90년 대 이미 한 차례 홍역을 치른 봉제업계만 덜 한 편이다.

‘설마, 우리 종업원은 안 그런다’ 생각하지 마라. 큰 코 다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업주가 한둘이 아니다. 그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겁내지 마라. 노동법 준수하면 된다. 그리 어렵지 않다. 관련 서류 꼼꼼하게 챙기면 될 일이다. 매일매일 기록하고 보관해라. 귀찮다고 미루지 마라. 쌓이면 덮어두기 마련이다. 단속은 꼭 그럴 때 나온다. 뒤늦게 후회해야 말짱 도루묵이다. 미리미리 준비하고 챙겨야 할 이유다.

한인업주와 종업원의 만남은 유별나다. 첫 출발부터 호형호제한다. 가족처럼 지낸다. 그러다가도 헤어지면 남남이다. 가족적인 분위기는 온데간데없다. 감쪽같이 자취를 감춘다. 조금도 찾아 볼 수 없다. 지나간 추억일 뿐이다. 오히려 남보다 못한 원수가 되기 일쑤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을 게다.

업주와 종업원의 첫 시작은 좋다. 그렇다고 항상 좋을 수만은 없다. 갈등도 생기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업주들은 종업원이 별로 일을 안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경향이 강한 업주들이 있다. 그들은 더 준다고 여긴다. 베푼다고 착각한다.

반면에 일을 너무 많이 한다고 생각하는 종업원도 있다. 그러니 언제나 보수가 적다 불평한다. 업주 험담도 한다. 항상 불만을 버리지 못한다. 그런 업주와 종업원은 신뢰가 깨진다. 감정이 좋을 수가 없다. 서로 맞지 않으니 함께 가기 어렵다. 그렇다고 무작정 헤어지면 안 된다. 잘 헤어져야 한다. 감정이 섞인 이별은 소송만 불러올 뿐이다.

업주가 종업원을 일방적으로 해고시킬 때가 있다. 그러면 소송 확률이 높다. 해고당하는 종업원은 자존심이 상한다. 마음에 상처도 남는다. 손해 본다고 생각한다. 분함을 참지 못한다. 업주에 대한 악감정도 생긴다. 그러니 그냥 물러서기가 쉽지 않다. ‘너 잘 살아라!’ 욕만 하고 포기하면 다행이다. 소송꺼리를 찾아 나서면 그게 문제다.

종업원이 스스로 나간다고 안심할 일도 아니다. 종업원이 감정을 갖고 떠나면 꼭 뒤탈이 난다. 가령 업주의 횡포가 심하다. 나만 싫어한다. 비인간적이라 꼴도 보기 싫다 등의 감정으로 그만 둘 때다. 그러면 소송으로 번질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
감정 없이 나가는 종업원이 깜짝 소송을 할 때도 있다.


업주가 전혀 예상치 못하는 상황이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격이다. 그런 사례는 일부 비영리단체나 악덕 변호사의 꼬드김에 넘어갔기 때문이란다.

한인업주들은 거의 다 종업원들에게 최저 임금, 오버타임 등을 준다. 그런데 한인업계의 최대 고민은 종업원 소송이다. 왜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노동법규와 규정에 맞게 임금 명세서 등 관련 서류를 구비해 두지 않은 업주들 때문이다.

업주가 종업원과 가족처럼 지내는 것은 기본이다. 노동법 관련 서류를 미리미리 꼼꼼하게 챙기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아직도 못하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서둘러 준비하자. 그래야 나중에 소송, 단속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은 ‘미리 준비함이 있으면 어떤 환란도 아무런 걱정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지금이야말로 한인업주들에게 유비무환의 자세가 꼭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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