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국민을 울리지 말라

2015-05-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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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일본으로 강제징용을 다녀온 먼 집안어른이 있었다. 나이가 들어도 멋지신 할아버지는 해방 후 돌아와 처자식을 다시 만나 사셨는데 20년 후 일본에서 아들이 찾아왔다.

어린 기억에도 청년은 아버지를 닮아 인물이 훤했는데 우리집 안방에서 집안 아주머니들에게 무릎을 꿇고 허리를 반이나 꺾어 인사를 했었다. 일제 비누세트를 선물로 받아든 아주머니들이 수군거리던 말에 의하면 일본의 어머니는 재혼도 않고 평생 혼자 사는데 아들은 조선인이라는 멸시와 사회적 불이익으로 일찌감치 양자를 가서 성씨를 바꾸었다고 했다. 버려진 자식이지만 그래도 아버지라고 한번 보고 싶어 바다를 건너온 청년은 한마디 한국말을 못한 채 아버지 앞에서 눈물만 쏟다가 갔다고 했다.


강제징용을 간 할아버지가 어떤 연유로 일본 여인을 보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운이 좋아 살아 돌아왔던 것이다. 많은 조선인들이 처자식을 고향땅에 남겨두고 낯선 타국 땅에서 가혹한 노역을 하다가 숨졌다.

아직도 일본, 사할린, 동남아, 남양군도 등 탄광과 군수공장, 비행장 건설, 산업시설에 강제동원 된 조선인들이 죽어서도 못 돌아오고 있다. 특히 일본 홋카이도 탄광 주변 곳곳의 사찰에는 조선인 유골보관함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조선인 강제징용의 한이 서린 일본 산업시설들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될 예정이라고 한다. 등재가 유력한 23개 산업시설 가운데 7개가 태평양 전쟁 당시 조선인 6만여명이 지옥같은 고통을 받은 곳이다.

일본은 600년 막부시대가 끝나고 천황시대가 열리면서 1868년 부국강병 지침과 함께 메이지 유신이 시작되었다. 정부는 아낌없는 지원으로 대규모 해외사절단을 보냈고 세계에서 지식을 얻어온 이들이 일본 중공업화를 주도했다. 잠사공장, 독일식 광산공장, 영국식 군수공장을 도입하고 국영기업과 민영기업을 대대적으로 지원하며 단기간에 성과를 이루었다.

그런데 성장의 지름길로 택한 것이 조선을 침략하고 청일전쟁, 러일전쟁, 만주사변, 중일전쟁을 일으키더니 1941년 진주만 공습으로 시작된 미국과의 전쟁이었다.
이번에 규슈, 야마구치 지역 산업시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신청하면서 시기를 1850~1910년으로 한정한 점이 놀랍다. 1937년 중일전쟁이후 이곳에 끌려온 식민지 조선인의 징용사실을 감추려는 것이다.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가장 가동이 활발했고 지금도 사용되는 곳이 있는데도 말이다.

또한 13일에는 미나미큐슈시가 동경 외국특파원협회에서 2차대전 자살특공대의 유서 등을 세계기록 유산으로 신청하겠다며 기자회견을 했다. 가미카제 특공대는 유서를 써놓은 다음 출정하여 자신의 죽음을 제물로 삼아 다른 이들을 죽였다.

아베 신조는 오래전부터 집단자위권 행사를 하고 싶어 들썩이더니 14일 기어코 임시각의의 용인을 받아냈고 올여름 안으로 법안처리를 강행하면 앞으로 전쟁을 할 수 있는 모양새를 갖추게 된다.


메이지 유신 80년의 경제성장을 한순간에 잿더미로 만들었지만 20년 후 기적적인 경제성장을 이뤄낸 그들이다. 하지만 아무리 찬란한 미래가 보장된다 해도 전쟁의 참화 속에 가족을 잃고 집이 망가져 거리로 나앉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국민을 울리는 정부는 결코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

산업시설의 세계유산 등재여부는 6월말 독일 본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최종 결정된다. 이 안건을 놓고 한국정부와 일본정부가 조만간 만나기로 한 모양이다. 이번에야말로 한국정부의 외교력을 발휘하여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막아야 하고, 여의치 않으면 ‘조선인 강제징용’이란 진실을 반드시 기록하게 해야 한다.

우리 모두, 일본 산업시설 세계문화유산 등록반대 캠페인을 펼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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