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흙이 안 보인다

2015-05-1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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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상기(의사)

몇 년 전 한국을 다녀왔다. 옛날에 내가 살던 서울의 집과 동네는 자취도 없이 변해버렸다. 6.25전쟁 때 피난살이하던 시골동네 초가삼간 집도 차고가 달린 양옥집으로 되어 있었다. 고향이 없어진 신세가 됐다. 조상님들의 발자취도 찾을 수 없는 고아신세다. 아니 이것이 내 나라인가 할 정도로 온통 뒤집혀 있었다.

마당이 있었던 집들, 저녁연기가 나오던 굴뚝, 고무줄 넘나들던 소녀들, 자치기하던 소년들은 안보였다. 땅의 흙들은 모두 시멘트로 덮여져 자동차길이 되고 도처에 솟아있는 콘크리트 아파트 단지들이 하늘을 가린다. 그동안 한국이 세계 무역 10위권이며 경제대국인 ‘한국의 기적’이란 말은 들어왔지만 ‘콘크리트 공화국’인줄은 실감 못했다.


일본만 해도 동경을 벗어나면 소도시와 농촌이 옛날 사무라이 시대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며 대대로 조상들의 직업을 이어가면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장려하고 있다. 흙에서 농사를 지어 생긴 쌀들은 곳간에 쌓아두고 외국 패스트푸드를 즐겨먹고 색깔 있는 음료수들을 마시더니 아이들의 체중이 늘어 야단이다. 황사가 날아오면 흙속에 스며들지 못하고 고층아파트 단지에 쌓여 시민들을 괴롭힌다. 흙으로 맺어진 동네는 협동정신이 싹트지만 콘크리튼 건물 속에서 아래층 위층 사이에 싸움하기 바쁘다. 콘크리트 단지란 대부분이 부동산 투기를 노린 정상배들의 산물이지 시민들의 자연스러운 삶의 터전이 아니다.

한국을 기름 한 방울 안 나오는 땅(흙)이 좁은 나라이다. 그러나 자동차는 수없이 많다. 주차를 제대로 못한 차들이 길거리 도처에 혼잡을 만들고 있다. 서울시내 출퇴근 교통체증은 뉴욕보다 더 심하다. 운전자들의 광폭한 성품과 교통법규 위반은 교통사고율을 높이고 매일같이 보도되는 사고는 교통사고 공화국을 연상케 한다. 환경오염, 기름값, 인명피해, 의료비, 보험료 등을 합치면 나라경제 손실이 천문학적 수준일 것이다.

자연(흙)이 죽어간다. 조상들이 물려준 흙의 전통이 자동차놀음과 콘크리트 아파트단지로 다 손실된다면 후손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우리들의 허영심이 너무 컸다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자본주의와 과학문명의 독주도 자연의 기반이 있어야 사람의 삶은 유지될 수 있음을 배우게 된다. 약 2,500년 전 중국의 노자(老子)선생은 말씀하셨다. “사람은 땅을 법도로 삼고, 땅은 하늘을, 하늘은 도(道)는 자연을 법도로 삼는다.”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은 흙을 찾는 자연 속에 있다고 믿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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