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갈대밭에서 살고 지고

2015-05-1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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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 (교육가)

댁 전화번호는? “잠깐 기다리세요.” 그럼 생년월일은? “잠깐 기다리세요.” 댁의 현주소도 알아야 하겠네요. 그는 계속하여 손가락을 움직이면서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답한다. “아주 편리한 비서를 두셨어요. 혹시 기억하는 일을 모두 아웃소싱(outsourcing)하셨나요?” “지금 제게 물어보신 것은 단순한 기억력에 관한 것이었지요.” 정말 그렇다. 그럼 우리의 판단력은 어떤 과정을 밝아서 결정되는지 알고 싶다. 결국 판단력이란 기억을 바탕으로 하여서 생각을 거듭한 결과인 것이다.

회사들 중에는 즉각적으로 판단하고 쉽게 대답할 수 있는 것을, 인건비가 저렴한 다른 나라의 일감으로 넘겨주어서 일의 처리를 비교적 저렴하게 하고 있다. 일반인도 각 개인의 잡다한 기억할 사항을 편리한 기계에 입력하는 일이 생활화 되었다. 사실 그런 세세한 것까지 기억하는 일이 쉽지 않고, 기억력이 분산되는 경향이 있다. 그 대신 꼭 기억해야 하는 일이라면, 삶에 중대한 뜻을 주는 것들로 한정하고 싶다. 그것조차 잘 선택하여서 틀림없이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보배스러운 것은 ‘생각하는 것’이다. 즉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의 생활이 발전하였고, 향상되었다. 또한 우리가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삶이 즐거워졌다. 따라서 생각하는 일을 귀중하게 다루고, 그 내용이 새롭고 다양하게 될 수 있도록 하는 영양소와 마음의 공간이 필요하다. 소소하고 잡다한 것들은 기계가 기억하도록 맡기는 이유도, 여유로운 생각의 공간을 넓히기 위함이다.

만일 생각하는 일을 아웃소싱하면 어떤 결과를 얻게 될까. 사물의 판단력이 책임을 질 수 없는 결과에 도달할 수도 있다. 기계는 다양한 자료 제공으로 우리를 도울 수 있지만, 최종적인 판단은 사람의 몫이다. 이 사실이 우리를 기쁘게 하고, 생각을 거듭해야 하는 이유이다.

어린이들에게 사고력을 길러주고 싶으면 질문 공세가 필요한 줄 안다. 왜 그것이 좋아? 왜 꼭 가지고 싶어? 왜 사달라고 해? 왜 그 친구가 좋아? 왜 먹지 않겠어? 왜 학교에 가기 싫어? 왜 밖에 나가고 싶어? 왜 오늘은 기분이 좋아? 왜 책 읽기가 싫어? ... 등 일상생활에서 여러 가지 질문을 할 수 있다. 이런 일상생활의 습관은 즐겁게 어린이들이 생각하도록 이끈다.

또한 이런 생각하는 습관은 자연스럽게 친구 사귀기, 전공학과 정하기, 남녀 교제, 직업 선택, 배우자 결정...등 생활 철학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런 것을 떠나더라도 생각하며 생활하는 즐거움을 알게 된다. 이어서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말을 되살리게 된다. 파스칼은 “인간은 하나의 갈대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 중에서 가장 약한 것이다. 그러나 생각하는 갈대이다”라고 말하였다. 이어서 “우주 공간이 나를 포함하고,...나는 우주를 포함한다”고 말하였다.

내 자신이 생각할 일을 남에게 맡길 수 없다. 할까, 말까 같은 사소한 일부터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일까지 내 자신의 결정이 있음이 마땅하다.“어떤 옷을 입겠어요?” 이런 물음을 듣고 엄마 얼굴만 쳐다보는 어린이, “무엇이 먹고 싶어요?” 몇 번 물어도 결정을 못하는 어린이, “좋아하는 색깔의 연필을 가져도 좋아요!” 이때 이 연필, 저 연필을 집었다 놓는 어린이들을 보고 있으면, 확실하게 각자가 좋아하는 것을 정하지 못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과정을 지나더라도 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확실히 하면 좋겠다. 이런 현상은 물건의 선택만이 아니고, 일상생활의 각 분야에서도 볼 수 있다.

우리는 제각기 다르다. 각자는 활개 치며 행복하게 살아나갈 사람들이다. 각자의 생각을 구김 없이 펼치며 살 수 있는 세상이다. 어린이들도 어른들도 각자의 특권을 살리며 넓은 세상을 살면 좋겠다. 드넓은 갈대밭에서 바람에 춤추며 서로 사랑하면서 살면 얼마나 좋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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