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냥 좋은 사람”

2015-05-1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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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창흠(논설위원)

지인이 문자메시지로 좋은 글을 보내왔다. 제목은 그냥. 카피라이터 정철의 저서 ‘인생의 목적어’에 실린 글이다. 이유 없음이라는 가장 큰 이유로 꼽는 그냥에 관한 글의 내용은 이랬다.

‘사람이 좋아하는 백만 가지 이유. 그 중 가장 멋진 이유로 ‘그냥’을 꼽았다. 논리와 과학이 개입 하지 않아 오히려 더 멋진 이유다. 왠지 그냥 좋다는 말이 그냥 좋다. 사람을 좋아하는 일. 딱 부러진 이유가 꼭 있어야 할까? 그냥 좋으면 된다. 그냥은 ‘아무 이유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라는 뜻이기도 하다.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이 만든 언어는 한계가 있다. 복잡다단한 감정을 한 두 마디 언어로 표현하는 것. 그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태어난 절묘한 말이 ‘그냥’일 것이다.

‘그냥’은 여유다. 긴 인생을 살면서 자잘한 이유들은 일일이 상대하지 않겠다는 너털웃음 같은 것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 앞에 그냥이라는 말 하나만 얹어도 우리 인생은 훨씬 더 헐렁하다. 넉넉하고 가벼워진다. 우리 인생에 ‘그냥’이라는 말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문득 떠오른 ‘그냥’이라는 말. 뜻이 궁금해 사전을 들춰봤다. 그리고 그냥 사색에 빠져들었다.

‘그냥’의 사전적 뜻은 ‘변함없이 그 모양으로’다. 그대로 줄곧. ‘아무 뜻이나 조건 없이’라고 적혀 있다. ‘그냥’은 원인은 있지만 그 원인이 불분명할 때 쓰는 말이다. 정확한 대답은 아니다. 의미 없는 답이다. 마치 행위 예술처럼 즉흥적이다. 그저 유유자적하다. 허물도 없다. 단순하다. 그렇기에 오히려 따스한 정이 흐른다. ‘그냥’은 그런 말이다.

살면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그 중에도 그냥 좋은 사람이 있다. 그냥 만나는 사람. 그냥 대화하는 사람. 그냥 어울려 지내는 사람. 그렇게 그냥 함께 사는 사람. 그런 사람이다.

그냥 향기가 나는 사람. 싫증나지 않는 사람. 다시 보고 싶은 사람. 그리워지는 사람. 왠지 전화하고 싶은 사람. 함께 술 한 잔 마시고 싶은 사람. 마음의 청량제가 되는 사람. 그냥 저절로 생각나는 사람. 왜 좋으냐고 묻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 그냥 좋은 사람이다.

좋은 이유를 딱히 꼬집어 말 할 수 없는 사람. 싫은 느낌이 전혀 없는 사람. 침묵 속에서도 어색하지 않은 사람. 한 참 떠들어도 시끄럽게 느껴지지 않는 사람. 서로의 마음을 공유할 수 있는 것만으로 기쁜 사람. 그런 사람 역시 그냥 좋은 사람이란다.


돈이 많아 좋은 사람. 권력 있어 좋은 사람. 집안 좋아 좋은 사람. 나에게 잘해줘 좋은 사람. 그런 사람은 그냥 좋은 사람이 아니다. 이유가 없어지면 떠날 사람일 뿐이다. 이유나 조건이 붙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 그냥 좋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냥 좋은 사람이 가장 좋은 사람이다.

세상에는 누구에게나 그냥 좋은 사람이 있다. 부모는 자식에게 그냥 좋은 사람이다. 함께 있으면 그냥 편안하니까. 자식은 부모에게 그냥 좋은 사람이다. 함께 있으면 그냥 든든하니까. 사랑하는 사람은 그냥 좋은 사람이다. 함께 있으면 그냥 행복하니까. 친구는 누구에게나 그냥 좋은 사람이다. 함께 있으면 그냥 즐거우니까. 이처럼 부모, 자식, 사랑하는 사람과 친구는 서로 서로그냥 좋은 사람이다. 그래서 안 보면 그냥 보고 싶다. 언제 어디서나 그냥 그리운 사람이다.

요즘 사람들은 머리는 있어도 가슴은 없다고 한다. 사람들을 가슴으로 만나지 않기 때문이다. 머리로 먼저 계산한다. 나에게 유리할 것인지 먼저 따진다. 불리하면 등 돌리기 일쑤다. 서로가 마음을 주고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그러니 그냥 좋은 사람 자체를 모른 채 살아가는 셈이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람이다. 사람이 바로 재산이다. 그래서 사람을 그냥 이유 없이 사귀고, 만나는 것을 행복이라고 한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지금 행복하십니까? 주변에 그냥 좋은 사람은 얼마나 있습니까? 아니, 당신은 지금 누구에게나 그냥 좋은 사람입니까? 그냥 그렇게 내게도 질문을 던지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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