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과유불급, 다다익선

2015-05-09 (토)
크게 작게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세상을 살다 보면 넘치면 안 될 것이 있고 넘쳐도 좋은 것이 있음을 본다. “적당한 선에서 그만 두었더라면”하고 후회할 일도 있고 “좀 더 밀고 나갔다면 더 좋았을 텐데”하고 미련을 가질 일도 있다. 대개의 경우 넘쳐서 후회할 일은 욕심이 과하여 그렇게 되는 상황과 어리석음에서 비롯될 때가 있다. 욕과 어리석음 피해야 된다.

몇 달 전인가 보다. 둘째 딸이 조그만 화초를 사다 주었다. 작은 화분에 담긴 화초는 뿌리가 많고 잎이 성하다. 다른 화초들과 함께 기르기에 일주일에 한 두 번씩 물을 준다. 그런데 딸이 사 준 화초가 영 시들시들하다. 그래서 물이 부족한가 하고 물을 매일 주었다. 그랬더니 점점 더 시들어간다. 도대체 이유를 알 수 없다.


하루는 자세하게 그 화초의 화분을 들여다보았다. 아니 이게 웬 일인가! 물이 홍건하게 홍수 난 것처럼 화분에 고여 있다. 넘치게 물을 준 게 화근이 됐다. 그래서 화분에 있는 물들을 싱크대에 부으니 물이 쭉 빠져버렸다. 이제는 괜찮겠지! 하고 물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을 지났는데도 화초가 다시 살아날 기미가 없다.

물을 너무 넘치게 주었든 게 화근이 되어 이미 화초의 뿌리들이 썩어버렸나 보다. 다시 물을 조금씩 주며 아침저녁으로 화초가 살아나기를 고대해 본다. “딸이 아빠 생각해서 사준 화초인데 이대로 죽어 버리면 어떻거나!” 괜히 걱정이 앞선다. 딸이 화초를 보며 화초하나 보살피지 못한 아빠에 대한 실망감을 생각해 보니 아찔하다.

논어(論語) 선진(先進)편에 보면 공자와 제자 자공과의 대화가 나온다. 자공이 “사(師)와 상(商)은 누가 더 현명합니까?” 라고 묻는다. 공자 왈 “사는 재주가 너무 지나치고 상은 모자라느니라”고 답한다. “그러면 사가 더 낫습니까?”고 물으니 공자는 “과유불급(過猶不及), 즉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과 같으니라”고 대답해준다.

공자의 저술인 논어의 핵심사상 중 하나는 치우침이 없는 중용(中庸)이다. 자장인 사는 적극적이었고 자하인 상은 근엄 소신하였으므로 이 두 인물을 평한 과유불급은 공자의 이상인 중용사상을 단적으로 나타낸 말이다. ‘넘치는 것이 모자람과 같다’는 이 말은 흔히 ‘넘치는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란 뜻으로 해석돼 많이 쓰인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한나라 고조 유방과 천하통일의 일등공신인 한신이 서로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유방이 한신에게 묻는다. “과인은 내가 몇 만의 군사를 통솔할 수 있는 장수로 보이나?” 이에 한신은 “황공하오나 폐하는 10만 대군정도쯤 통솔할 장수로 보입니다.” 그러니 유방은 “그럼 자네는 몇 만을 통솔할 인물인가?”

한신의 대답은 “예, 신은 다다익선(多多益善)입니다.” 이에 유방이 빨끈하여 그러면 자네는 왜 나의 포로로 잡혀 신하가 되었는가고 묻는다. 그러니 한신은, 폐하는 병사의 장수가 아닌 장수의 장수이기에 자신이 포로로 잡혀 신하가 되었다 하여 목숨을 부지한다. 다다익선. 많으면 많을수록 즉 더하면 더할수록 좋다는 뜻이다.

과유불급엔 보약이 예가 된다. 몸에 좋은 보약이라고 너무 많이 먹게 되면 오히려 독약이 된다. 안 먹음만 못하다. 운동도 마찬가지. 너무 과로하게 하면 몸이 더 망가질 수 있다. 화초도 물을 조금씩 주어야 한다. 넘치게 주면 뿌리 체 썩어버린다. 더욱이 넘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네 마음 속 욕심이다. 넘치면 반드시 탈이 난다.

반면에 넘치고 넘쳐도 탈이 안 되는 다다익선. 부모공경, 이웃사랑, 불우이웃 돕기 등등 수도 없이 많다. 네팔에 큰 지진이 일어나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 중에 있다. 이들을 돕기 위해 성금 하는 것. 많이 하면 많이 할수록 좋은 것이다. 과유불급의 중용. 치우침 없이 살라는 말이요 사기의 다다익선. 좋은 일 많이 하란 뜻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