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족이라는 이름

2015-05-0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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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5월 2일 영국 버킹엄 궁에서 25년 만에 공주가 탄생했다. 윌리엄 왕세손과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비 부부는 공주의 이름을 샬럿 엘리자베스 다이애나로 지었다.
샬럿은 할아버지 이름인 찰스 왕세자의 여성형 이름이고 엘리자베스는 증조할머니인 엘리자베스 여왕 이름, 그리고 다이애나는 할머니인 고 다이애나 빈의 이름을 물려받았다.

스펜서 다이애나(1961~1997)는 1981년 찰스 왕세자와 결혼하였으나 불행한 부부생활로 1996년 이혼하고 1997년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살아생전 봉사와 자선활동을 하며 뛰어난 미모와 패션 감각으로 인기를 끌었던 다이애나는 37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갓난 공주의 이름에 붙여진 다이애나는 사춘기 소년시절 비운 속에 살다간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윌리엄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 같다. 다이애나의 이름은 계속 불리면서 왕실의 가족으로 존재할 것이다.

미국을 비롯 서양에서는 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그럴 경우 아버지와 아들을 구별하기 위해서 아버지 이름에는 Sr.(Senior), 아들 이름에는 Jr.(Junior)를 붙여 사용한다.

때로 손자도 같은 이름을 쓰기도 하는데 이 경우 손자이름에는 III(the third)를 붙인다. 만일 증손자도 같은 이름을 쓴다면 이름에 IV(the fourth)를 붙인다. 1세에 이어 2세, 3세, 4세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석유왕’ 존 데이비슨 라커펠러는 아들 존 데이비슨 라커펠러 주니어에게 자신의 이름을,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킹 주니어는 아버지인 목사 마틴 루터 킹의 이름을 물려받았다.

얼마 전 기획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니 남미의 한나라에서는 아이들이 대부분 조상의 이름을 물려받는 풍습을 지니고 있었다. “난 할아버지 이름 물려받았어요. 동생은 할머니 이름을 쓰지요.”10대 소년은 할아버지가 당신의 이름을 자기에게 주었다고 자랑했다. 아들은 할아버지나 아버지, 삼촌 혹은 고인이 된 조상의 이름 중에서, 딸은 할머니나 어머니, 이모나 숙모 등의 이름을 선택하여 대를 이어가고 있었다.

평소 친밀했고 존경했던 이의 이름을 대물림하면 가족간 유대관계가 깊어지고 비록 육신은 사라져도 이름으로 남아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이름을 물려받는다는 것은 신분, 계급, 혈연, 전통을 잇는다는 뜻이다. 서양인의 성은 거주지 및 출신지에서 따온 성(地名姓), 아버지 이름, 집안의 직업이나 관직, 별명을 성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자신의 선조를 알고 자신의 가족 이름을 존속시키고자 하는 선천적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고대이집트인, 아랍인, 바빌론인, 그리스인, 켈트인, 색슨족, 로마인 모두 족보를 기록했다.

동양의 경우에는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이 예에 어긋난다고 여겼던 한자문화권의 인식 때문에 부모나 조상의 이름을 부를 때 ‘아무개’라 하지 않고 ‘아 무자 개자’라고 불렀다.

이러한 유교적 습관이 머릿속에 있어선지 뉴욕 한인들이 이름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아버지가 명망 있는 의사나 변호사 등의 전문직, 비즈니스에 크게 성공한 사람들은 더러 자신의 이름 뒤에 주니어를 넣어 아들 이름을 짓는다.

보통 자신이 이룬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긍지, 자부심도 있고 자손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답습하기 바란다. 그래서 부르기도, 듣기도, 의미가 있는 이름을 물려주고 싶어 하는 것 같다. 한인이민의 역사가 길어질수록 조상의 이름을 물려받는 가정이 많이 생길 것이다.

가정의 달 5월이다. ‘가족이라는 이름’ 뒤에는 무엇이 와야 가장 적합할 까? 실망, 미움, 배신, 상처, 포용, 평화, 희망, 사랑$ 본인이 스스로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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