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산 너머 남촌에는

2015-05-0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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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진<작가>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중학교 입학하여 국어 첫 시간에 선생님이 들려주시던 파인(巴人)의 시다. 창밖으로 넘실대는 봄 냄새에 마냥 취해 눈을 감은 채 이 시를 음송하시던 선생님의 모습 또한 시 만큼이나 감동적이어서 나는 매년 멀리 남쪽에서 봄소식이 올 때쯤이면 어김없이 이 시를 떠오르게 된다.

예전 우리네 삶은 평생 30리 밖을 나가보지 못하고 산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니 그런 분들에게는 산 너머가 미지의 꿈속의 세계인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래서 일 년에 한두 번 재를 넘어오는 소금장수가 그렇게 반갑고 방물장수가 기다려질 수밖에 없었나 보다. 파인 또한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 그렇게나 산 너머 남촌이 그립고 그리워 이런 노래를 불렀던 모양이다.


일찍이 가족들과 남미로 이민을 떠나는 바람에 헤어졌던 어릴 적 불알친구를 뜻밖에도 50여년 만에 서울에서 만났다. 시골 촌놈이 세상 밖으로 나가 크게 성공했대서 고향에서는 꽤나 유명했던 그를 오랜만에 만나 그동안 그의 삶을 들어보니 소문만큼이나 대단했다. 땅을 파고 농사를 짓는 일에는 이골이 난 터라 처음 아르헨티나 정부로부터 할당 받은 시골구석의 황무지를 뼈 빠지게 개간하여 이내 식솔들의 호구는 면할 수 있게 되었다는데 그렇게 몸을 굴려 먹고사는 것만으로는 만족 할 수 없어 다시 가족들을 데리고 도시로 나와 이번에는 재봉틀 하나를 사서 온 식구가 달라붙어 옷을 만들어 팔았다고 한다.

눈썰미가 좋았던 탓에 한국의 각종 의류를 카피하여 시장에 내놓은 제품이 크게 히트하는 바람에 곧 옷장사는 커지고 가정도 차츰 여유가 생겼다는데 이처럼 생활이 안정되자 이번에는 자식들 뒷바라지를 위해 또다시 교육환경이 좋다는 미국으로 거처를 옮겼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사업체가 있는 아르헨티나와 집이 있는 미국을 오가며 그렇게 장돌뱅이 아닌 장돌뱅이로 한평생을 보냈다는데 그래서 이제는 남미 쪽에서는 제법 영향력도 행사 할 수 있는 명사 축에도 끼게 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한평생을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어느 듯 은퇴해야 할 때가 되었고 은퇴 후의 삶을 계획하다보니 그동안 잊고 살았던 고향이 그리워져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 나왔다는데 한마디로 역마살이 끼어 지구 전체를 비좁은 듯 누비고 살아온 그의 인생역정이었지만 그래도 마지막으로 의지할 곳은 고향땅 작은 언덕위인 것 같다고 했다.

길지 않은 우리네 일생동안에 세상은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해버렸다. 그래서 온 세계가 일일생활권으로 좁아져 버렸고 지금도 계속 더 좁혀져 가고 있다. 이렇게 인구는 늘어나는데 하나뿐인 지구는 좁아져 간다면 우리의 미래는 과연 어찌 될 것인가.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말 할 수 없는 문명의 발전을 가져와 생활은 편리해지고 수명은 늘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우리네 행복지수도 그만큼 높아졌다고 말 할 수 있을까? 일찍이 신은 우리에게 절제(Limit)를 요구하셨다. 이것이 서양에서는 선악과(Knowledge)요 동양에서는 천기(天機)라 말 할 수 있는데 요즘 끝을 모르고 하늘로 치솟는 마천루와 우주 경쟁을 보면서 뜬금없이 파인의 ‘산 너머 남촌’이 떠오르는 것은 어인 일일까, 봄이 오고 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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