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행복한 연주하기

2015-05-0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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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라<첼리스트>

가끔 잘 꾸며진 인테리어에 지난 세기 위대한 작곡자들의 자필 악보가 실물처럼 복사되어 걸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낡아져 버린 종이에 흐릿한 흘김의 음표들은 그냥 보기에도 고풍스럽고 아름답다. 만약 누군가가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의 원본을 보고 싶어 한다면 지금이야 인터넷을 뒤지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지만 내가 공부하던 2000년경에는 그런 호사를 누릴 수가 없었다.

만약 나의 학교가 그것을 소장하고 있지 않다 하면 인터 라이브러리 프로젝트에 요청하여 원본 악보의 팩시밀리를 가지고 있는 다른 도서관에서 내용물을 보내주어야 볼 수 있었다. 그 과정이 약 삼사일은 족히 걸렸는데 팩시밀리가 보급되기 전 세대에는 그저 할 수 없이 베를린으로 날아가 주립 도서관 (Staatsbibliothek zu Berlin)의 카탈로그를 일일이 뒤져서 찾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참, 세상 좋아졌다.


헌데 우리가 그러한 자필악보의 복사물을 애지중지 걸어 놓는 이유는 그 자체가 미적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다. 음악적인 훈련을 받지 않은 이들에게 그것은 비밀 암호쯤이나 심지어 죽어버린 벌레, 머리카락 뭉치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저 그 악보를 통해 만들어지는 소리의 위대함을 이미 알고 있기에 우리 집 벽에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그 작자와 감상자와 작품을 통하여 직접 만날 수 있게 되는 미술이나 문학과는 달리 음악은 연주자, 연주 행위를 통하지 않으면 그 가치가 전달 될 수 없는 특수한 장르로 연주행위가 이루어지는 그 시간 속에서 비로소 발현되는 예술이다. 그러므로 연주회장의 관객 역시 그러한 예술의 구현에 일부가 된다.

연주가 일어나는 그 순간 우리는 이미 죽어 땅에 묻힌 위대한 인물을 다시 불러내어 그 인물을 경험하고 그 정신 속에 잠기게 되는 것이다. 작곡자와, 연주자 그리고 향유자가 함께 같은 공간과 시간에 들어가 있는 것, 이것이 음악 예술의 궁극이다.

따라서 연주자는 겸손하여야 한다. 음표 하나하나에 담긴 작곡자의 의도를 소중히 여기고 세대를 넘어서 우리 손에 전달 되어온 지난 세기의 위대한 정신을, 인류의 유산을 오늘 내 손으로 구현해 낸다 하는 각오는, 하늘아래 고개를 숙이고 땅을 향해 허리를 굽히며 두 손을 모으는 기도의 손처럼 성실하고 겸손한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참으로 행복한 작업이다.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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