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4월의 언어

2015-04-2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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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순(수필가)

4월의 언어는 바람이다. 차가우면서도 희망이 느껴지는 봄바람. 마른 가지 위에 입김을 불어넣어 꽃피게 하는 저 유연한 몸놀림.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도 모든 걸 흔들리게 하는 힘. 개나리도 놀라 피었고 나뭇가지들의 새순도 연두색 잎을 피워 올린다.

꽃들은 웃음으로 말한다. 창밖에 핀 꽃들의 은유, 얼었던 마음도 풀리게 하는 상큼한 미소. 나는 꽃 마음으로 공원에 가보았다. 따뜻한 햇살에 이끌려 나온 많은 사람들의 몸짓이 한창이었다. 풀밭에 뛰노는 어린이들의 환호소리, 어른들과 함께하는 공놀이, 유모차를 끌고 나온 부인네들. 자전거와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청소년들. 공원산책을 즐기는 남녀노소들과 강아지들. 푸른 하늘을 떠도는 연 꼬리들의 곡선유희. 그들 속에 섞여 살아 있음이 행복하였다.


그러면서 차디찬 바다 속에 숨져간 생명들에게 미안해졌다. 어떤 이들은 이제 그만 말하자 했으나 그들이 사라져간 4월이어서 더 가슴이 아팠다.

영혼이라도 위로해주는 게 살아있는 자의 도리가 아닐까. 바람이 지나간 듯 쉽게 잊고, 쉽게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들.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원인 규명을 철저히 하도록 촉구하는 일 또한 살아있는 자들의 몫이리라.


4월의 언어는 사색이다. 지금까지 밀쳐 두었던 생각들이 얼음 녹듯 풀리는 여유로움. 아지랑이처럼 번져 나오는 사고로 창조의 문을 열어 보는 것. 동면의 시간을 지난 침잠의 정신으로부터 솟아나오는 샘물. 어떤 이는 삶의 제단에 그 성수를 뿌릴 것이고, 어떤 이는 욕망의 입술에 그 물을 부을 것이다.

겨울옷으로 단단하게 자신을 감추었던 의식들을 깨부수는 일. 그것은 사색에 의한 사고의 변형에서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

초록의 4월은 기다림의 언어다. 살아있는 생명들은 전부 고개를 내밀고 말 좀 걸어 달라고 종알댄다. 내가 알지 못하는 먼, 어느 나라를 돌아서 내 앞에 서 있는 생명의 노래들. 나는 이제야 알겠다.

내가 기다렸던 것은 바로 그 창조의 탄생들이었음을. 마음속에 이는 잡스런 생각들조차 기쁨으로 바꾸어주는 봄날의 찬가들. 4월은 천진한 아이처럼 청춘의 더듬이들을 키우며 희망의 날들에 대해 기대한다. 그 때, 우주만물은 인간들에게 축복의 말들을 던질 것이고, 바람은 따스해질 것이다.

이 봄날, 내가 생각하는 것은 세상의 수십 억 종에 달하는 생명체 중에 꽃들은 왜 꽃으로 피고, 나는 왜 만물의 영장인 사람의 몸으로 태어났을까. 4월은 인간의 몸으로 태어난 그 자체만으로, 살아있음만으로 크나큰 축복이라고 한다. 4월은 바람과 꽃과 사색과 기다림과 희망의 말로 마음에 새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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