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까마귀의 안갚음!’

2015-04-27 (월)
크게 작게
연창흠(논설위원)

치사랑은 손아랫사람이 손윗사람을 사랑함이다. 그런 사랑을 일컫는 것이 치사랑이라 한다. 이와 달리 손윗사람이 손아랫사람을 사랑함은 내리사랑이다. 특히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내리사랑이라 말한다.

‘안갚음’은 순 우리말이다. 안갚음의 안은 갚지 않는다는 ‘아니’의 뜻이 아니다. 마음 깊은 곳을 의미한다. 그러니 어버이의 은혜를 갚음이란 뜻이다. 자식이 커서 부모를 봉양하는 일을 말함이다. 발음상으로는 ‘앙갚음’과 혼동할 수 있다. ‘앙갚음’은 남이 나에게 해를 준 대로 그에게도 해를 준다는 뜻으로 사용한다. ‘안갚음’과 ‘앙갚음’은 전혀 다른 뜻이다. ‘안갚음’의 상반된 표현은 ‘안받음’이다. 다시 말해 깊은 마음으로 부모께 효도하는 것은 안갚음이고, 부모가 효도를 받는 것이 안받음이다.


부모와 자식은 서로 사랑한다. 부모의 자식사랑은 자애로운 마음이다. 자식의 부모사랑은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이다. 내리사랑과 안갚음은 그런 면에서 같은 맥락이다. 둘 다 가족간 사랑이란 의미를 지닌다. 다만 내리사랑은 안갚음에 비해 더욱 본능적이다. 그러다보니 자식만 사랑하고 부모은혜는 망각하고 사는 게 요즘 실상이 아닌가 싶다. 오죽하면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속담이 있겠는가.
조선 정조 때 학자인 김약련의 문집인 ‘두암집’에 ‘인계설’이 나온다. 인계설은 바로 ‘사람 닭 이야기’다. 그는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면 닭과 무엇이 다르냐는 취지로 이야기를 꾸몄다.

그는 닭을 유심히 관찰했다. 새끼 닭이 자라 병아리를 깠다. 어미가 된 닭은 자신을 낳아준 닭과 다투어 모이를 자신이 깐 병아리에게 주었다. 그렇게 새끼 닭을 사랑하는 어미닭이 자신의 어미 닭 모이를 새끼에게 먹이는 것을 본 것이다. 그리고 인간 세상과 견주어 그런 상황을 한탄했다.

“어미 닭이 병아리를 키울 때, 그 새끼 닭이 자라 그 어미 닭이 그 할머니 닭에게 한 행위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겠는가. 사람도 이와 다르지 않다. 열이면 열 다 부모를 제대로 모시지 못한다. 이에 비해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백 명 중 한 명 정도다. 또 자식이 자신을 잘 모시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일천 명 가운데 한 명에 불과하다. 사람이 닭과 같을 수는 없다.

닭과 같은 행동을 하면 사람이 아니다. 닭과 같은 사람은 ‘사람 닭’이라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는 자식만 사랑하고 부모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닭’과 같다는 의미인 게다.

자식만 아는 닭과 달리 까마귀는 효의 상징인 새다. 까마귀는 새끼들이 자라면 거꾸로 어미 새를 먹여 살린다. 어미 새가 죽을 때까지 공양하는 효성도 지극하다. 자식이 지금까지 부모로부터 받은 은혜를 다시 갚는다고 해서 반포조(反哺鳥)로 불린다. 자애롭고 효심이 많아 한자로는 자오(慈烏), 효조(孝鳥)라고도 한다. 그래서 까마귀는 부모의 ‘은혜를 갚는 새’로 불리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닭은 자식만 사랑하고 부모의 은혜를 저버리지만 까마귀는 안갚음을 실천하는 효심이 지극하다는 이야기다.

어느덧 4월의 끝자락. 오늘은 4월의 마지막 월요일. 주말부턴 5월의 시작이다. 5월은 가정의 달. 가정의 참 뜻을 되살펴보는 계절이 다시금 다가오고 있다.
가정의 행복은 부모와 자식이 서로 사랑하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그 중 효도는 모든 것에 앞서 먼저 지켜야 하는 덕목이다. 하지만 예나지금이나 부모에 대한 효가 자식사랑에 밀리고 있는 건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누구나 부모가 돌아가시면 효도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에 오래 사시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하지만 한 번 흘러가면 쫓아갈 수 없는 것이 세월이다. 돌아가면 다시 볼 수 없는 것이 부모님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후회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효는 미루었다가 하는 것이 아님을 하루빨리 깨달아야 하는 이유다.

까마귀도 늙은 어미 새를 봉양하는데, 우리는 저 새만 못함을 슬퍼할 줄도 모르면서 살아가고 있다. 뒤늦게 후회하지 말고 한번쯤 반성해 보자. 그리고 오늘부터라도 살아계실 때 열심히 효도하면서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