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하나밖에 없는 목숨과 생명

2015-04-2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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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

사람에겐 목숨이 하나밖에 없다. 사람뿐만이 아니다. 살아있는 모든 생물들에게도 목숨은 하나뿐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수천만 달러 나가는 대 저택이나 보석이 아니다. 목숨이다. 목숨은 곧 생명이다. 생명은 주어진 시간부터 하늘이 거두어가는 그 시간까지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우주보다 더 귀한 존재이다.

고등종교중 하나인 불교는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종교다. 그러기에 세상에 있는 가장 작은 미물이라도 생명이 있는 한 살생(殺生)을 금한다. 취재차 스님들과도 많이 만나고 사찰에도 많이 다녀보았는데 스님들은 사찰 안에 기어 다니는 작은 미물 한 마리도 죽이지 않는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그들의 모습이 보기에 좋다.


2009년 5월23일 노무현전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부산상고를 졸업하고 독학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지방법원 판사로 1년을 재직했다. 그 후 인권변호사로 활약하다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후 제16대 대통령이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런 그가 왜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바위에 떨어트려 버려야만 했나.

대통령을 지낸 후 그는 가족들의 비리에 얽혀 검찰 조사를 받게 됐다. 일약 한 나라를 좌지우지하던 대통령이었던 그가 졸지에 심문을 받게 되었으니 그 마음이 어찌되었을까. 그 보다 먼저 부인과 자녀들이 검찰 조사를 받았을 때 겪은 가장과 남편으로서의 아픔이 그를 생명까지 버리게 한 주 요인이 아니었을까 보게 된다.

2015년 4월9일 제19대 국회의원을 지낸 성완종 경남기업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 남의 집 헛간에서 잠을 자며 신문배달에 휴지수집 등 온갖 고생을 다하다 어머니와 아주 작은 돈으로 화물영업소를 차려 사업을 시작해 자수성가로 대 회사의 회장까지 지낸 그다. 그런 입지전적인 인물이 왜 또 자살을 택하여 죽었을까.

그가 남긴 메모 한 장과 죽기 전 기자와의 통화내역이 지금 한반도 남쪽을 벌집 쑤신 것처럼 만들어놓고 있다. 그도 노무현 전 대통령과 비슷한 맥락으로 부인과 가족을 먼저 생각한 것 같다. 그의 비리를 캐는 과정에서 가족들이 얽혀 검찰의 조사를 받게 되자 평소 힘이 됐던 사람들을 찾아 구원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었다. 두 사람의 죽음은 수사종결로 이어졌고 가족들은 검찰의 조사를 비껴가게 됐다. 그래도 죽지 말고 살아서 해결하려 했어야 하지 않았나.

하나밖에 없는 생명, 우주보다 귀한 목숨을 그렇게 허무하도록 버려야만 했을까.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허나 노무현의 죽음 때에도 성완종의 죽음도 살아 생보다 더 많은 말들을 하고 있다.

‘127 Hours’란 영화가 있다. 애런 랠스턴(Aron L. Ralston)의 실화를 영화화한 것이다. 애런은 28세 때 직장을 그만두고 산악여행을 다녔다. 그 와중에 콜로라도 블루 존 캐년에서 산을 타던 중 바위가 굴러 내리며 팔이 찍혀 꼼짝달싹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아무도 그가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5일이 됐다.

그대로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결단했다. 팔을 잘라야한다고. 그래서 그는 다목적용 칼로 팔을 자르고 탈출에 성공한다. 그리고 살아난다. 나중에 그는 그의 팔을 화장하여 그 장소에서 가서 뿌렸단다. 생명에 대한 사랑이 그를 죽음으로부터 건져냈다. 그는 잘라진 팔엔 의수를 달고 있지만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노무현과 성완종의 죽음. 살아서는 문제를 도저히 해결할 수 없었을까.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죽음으로 몰고 갔나. 죽을 수밖에 없는 극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팔을 스스로 잘라 살아남은 애런 랠스톤. 끔찍할 정도로 숭고한 생환이다. 하나밖에 없는 목숨과 생명, 하늘이 부르는 그 순간까지 보전하여 잘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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