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빈부의 공존공생

2015-04-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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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서민용 출입문을 따로 두겠다고 하여 차별 논란을 빚었던 뉴욕 맨하탄 중심가의 한 아파트에 청약이 시작되자 얼마나 많은 서민들이 몰렸는지 당첨이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가 되고 있다.

유리로 덮인 초고층 빌딩의 콘도미니엄형 아파트에 저소득층을 위한 55가구의 임대주택을 분양했는데 신청마감일인 20일 현재까지 8만8,200명이 신청서를 냈고 우편 접수까지 포함하면 9만명을 넘어 경쟁률이 1,600대1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허드슨강이 한눈에 보이는 이 아파트는 뉴욕타임스가 우려한대로 지난해부터 논란의 중심이 되어왔다. 아파트 주인들과 저소득층 세입자의 출입문이 따로 설치되고 세입자들은 콘도내의 수영장이나 헬스센터, 영화관 등에 들어갈 수 없으며 주소조차 서로 다르다고 한다.


논란이 커지자 개발업체측은 서민의 공간을 따로 분리해야 이 아파트가 더 비싼 값에 팔릴 수 있으며 자신들의 수익이 늘어나면 더 많은 서민주택을 지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주민들을 불평등하게 대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거세지자 뉴욕시가 규정 개정에 나섰다고 한다. 오는 6월1일 맨하탄 한인타운 인근에 짓고 있는 고급 아파트 319가구 중 서민 임대용 64가구도 신청을 마감한다.

이곳도 신청자가 엄청나게 몰릴 것으로 보이는데 고급아파트와 ‘한지붕’을 쓰고 싶은 서민들의 마음을 들여다보자.

뉴욕은 전 세계인이 살고 싶어 하는 대도시다. 특히 맨하탄은 젊은이들이나 은퇴후 노인들도 한번쯤 살아보고 싶어 하는 곳이다.맨하탄은 2~4블럭 사이에 식품점, 빵집, 청과상, 세탁소, 식당 등등이 가까이 있어 편리할 뿐 아니라 지하철을 비롯 대중교통 수단으로 공원, 뮤지엄, 갤러리 등을 쉽게 갈 수 있다. 다만 맨하탄에 살자면 돈이 무척 든다. 살기는 좋으나 집값에 생활비가 장난이 아니다.

질로우닷컴이나 스트릿이지 웹사이트를 보면 맨하탄지역 스튜디오나 원룸이 2,500~4,000달러, 투룸이면 4,000~6,000달러, 펜트하우스는 1만 달러이상도 부지기수다. 먹고 마시는 식비도 월등히 높다.

그런데 이 임대아파트는 스튜디오와 원베드가 600~800달러, 2베드룸은 1,000달러 정도라니 그야말로 시세에 비해 거저다. 이 렌트가가 아니라면 연봉 4만~7만5,000정도 받는 중산층은 언감생심 맨하탄에 살아볼 꿈도 못꿀 것이다.
그야말로 운이 좋아 당첨이 되어 이곳에 살게 되었다 하자.

소유주와 세입자가 출입구가 다르고 놀이터도 다르다 할지라도 입주자들은 동네 근처나 전철역, 델리에서 수시로 마주칠 것이다. 특히 어린 자녀들이 있다면 왕따가 생기고 아이가 커갈수록 부모의 직업이 판검사와 의사, 교사, 박봉의 주급쟁이 등등 은연중 비교가 될 것이다. 부의 과시욕을 지닌 소유주와 덤으로 사는 세입자 간의 자존심 싸움도 걸려 있을 것이다. 초호화 아파트와 임대아파트가 같이 있음으로써 불평등에 대한 심리적 부담과 불안감은 늘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2015년 1월 스위스 다보스(WEF)경제포럼에 온 정치·경제 지도자들은 세계경제의 현황을 논의했다. 대회직전 WEF 보고서는 ‘내년에는 전세계 상위 1%가 나머지 99%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부를 소유할 것이다’고 진단했었다.
소득의 불평등 문제는 앞으로도 다보스 포럼의 주요의제가 될 것이나 세제개혁이나 정책은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계층간 적대감을 해소하고 함께 사는 빈부의 공존공생은 어떤 것일까.

그야말로 1% 부자들은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삶을 위한 과세와 기부문화 활성화, 99% 서민들은 부에 대한 적대감, 원망, 부러운 마음을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내게 주어진 이 행운, 맨하탄을 즐긴다는 마음으로 ‘곁불’을 쬐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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