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똘레랑스(Tolerance)’

2015-04-2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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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창흠(논설위원)

군자는 다름을 인정하고 다를 것들끼리의 조화를 도모한다. 소인은 뭉쳐 있기는 하나 화합하지 못한다. 논어의 자로(子路) 편에 나오는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란 구절의 뜻이다. 다른 사람과 뜻하는 바, 이루고자 하는 바가 같지 않더라도 잘 화합해야 한다는 의미다.

화이부동의 화(和)는 각자의 견해나 주장을 하나로 잘 조화시켜 융합하는 화합이다. 화합은 상대방을 인정하는데서 시작된다. 상대방은 나와 생각이 다르다. 살아가는 방식도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인정하고 받아 들여야 한다. 화합의 과정은 상대방과 대화하고 공통의 이해가 만나는 지점을 찾기 위한 노력이다. 화합은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이념과 계층이 다르고 추구하는 목적이 다르더라도 아우르고 가야 한다. 그래야 대립을 최소화하고 다툼을 하지 않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불화를 일삼은 소인배가 될 뿐이다.


동이불화의 동(同)은 줏대 없이 남이 하는 일에 휩쓸려 쫓아다니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화목하게 잘 지내는 화(和)하고는 딴판이다. 남과 잘 어울린다는 점에서 같은 뜻을 지닌 것 같지만, 속뜻에 있어서 화(和)와 동(同)은 전혀 다른 뜻이다.

자기주관만 꼿꼿하게 지키며 살다보면 다른 사람과는 잘 어울리지 못한다. 외톨이가 되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남하고 어울리려고만 하면 부화뇌동하기 쉽다. 화(和)하면서도 동(同)하지 않는 삶.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세상은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공간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배척당하거나 어울리지 못하는 삶은 실패작이다. 그렇다고 가치판단의 기준을 무시하고 남이 하는 일에 휩쓸리며 사는 것. 그것 역시 올바른 삶이라 할 수 없다. 그러니 자신의 주관을 뚜렷하게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과 화목하게 지내야 한다. 그런 것이 지혜로운 삶의 자세다. 다른 사람과 두루 화합하면서도 자신의 소신을 지켜나가는 삶의 태도. 그것이 화부이동의 참 의미다.

화이부동은 똘레랑스(Tolerance)와 일맥상통한다.
똘레랑스는 ‘관용’이라는 프랑스어이다. 하지만 ‘너그럽게 받아들이거나 용서함’이란 관용의 뜻하고는 조금 다르다. 프랑스어 사전은 똘레랑스를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 종교적 의견의 자유에 대한 존중‘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는 상대방의 의견이나 사상, 이념 등을 존중해야 자신의 사상, 이념도 인정받는다는 의미다.

똘레랑스의 출발점은 ‘존중‘이다. 자기 자신의 생각과 행동만이 옳다는 독선의 논리로부터 스스로 벗어나기를 요구한다. 더불어 자신과 다른 것들도 인정하는 정신이 중요한 의미라 하겠다.

한인사회는 지금 뉴욕한인회장 선거 파행으로 편싸움이 한창이다. 뜻이 맡는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였다. 양분돼 다툼을 벌이고 있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고 서로 공격한다. 자신들의 이익만 생각한다. 대의적으로 옳고 그름도 없다. 절대 인정하거나 존중하지도 않는다. 그저 상대방을 무조건 흠집 내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무조건 편을 짜서 서로를 공격하는 당동벌이(黨同伐異)) 형국이다. 한인사회가 혼란에 빠져 갈등을 겪고 있는 것도 다 그래서다.

이대로 가다간 한인회장도 두 명이 나올 판이다. 그렇지만 한 지붕 2가족 사태를 막는데 필요한 골든타임은 아직 남아있다. 또 다른 선거(26일)와 법정판결(29일)에 앞서 이해당사자들이 화이부동의 마음으로 결단만 내리면 된다.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를 존중하다보면 화합의 길은 열릴 수 있다. 서로가 한 발 물러서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고 독선에서 벗어난다면 예전의 평온한 한인사회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 지금이야말로 그들에게는 개인보다는 한인사회를 위한 ‘똘레랑스’ 정신의 지혜가 필요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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