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민족 정신과 4.19혁명

2015-04-1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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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조(동양사상연구가)

우리 인류의 보편적 윤리 도덕과 양심의 발로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참된 자유와 인간성의 회복에 있다고 본다. 우리의 옛 조상들은 제도관이신 환인(桓因) 천제, 환웅(桓雄) 및 환검(桓儉) 천제님의 교도로 참 진리이고 참 생명을 추구하는 착한 백성들이었다.

그렇게 하여 온 세상을 참 이치(理致)로 평화와 자유의 사회로 실현시키는 이화 세계(理化 世界) 를 지향하였다. 이런 숭고한 사상 철학을 익혀 추구하였던 우리 민족이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어느새, 소위 다스림을 가장한 권력층은 이웃 민족의 부질없는 욕심, 즉 허망된 권력욕, 재물욕, 기타 여러 탐욕에 물 들여져 이웃과 동족을 도외시하고 탄압하는 작태가 행해, 많은 백성들은 억울한 삶을 강요당하곤 하였다.


그러나 그 후 의식 있는 의인들의 의거와 혁명은 많은 심혈을 바치면서 까지도 우리 인간성 회복과 자유 및 평화의 세상을 꿈꾸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진력을 다하곤 하였다.

예로 근대의 홍경래 의거, 동학 혁명, 3.1 운동과 4.19 혁명, 5.18 광주 의거 등에서 이를 찾아 볼 수 있다. 이승만 정권의 반민족적이고 반인륜적인 행태는 일일이 여기에 열거 하지 못하겠다.

1960년 3월 15일에 치러진 부정선거를 성토하면서 여러 곳에서 항의하는 순수한 청년 학생들의 시위를 이북 공산당의 사주를 받았느니 하면서 과거에 여러 해 동안 써 먹던 버릇을 그대로 적용 탄압하였다.

4월 11일에 남진 중학교 졸업생 (마산 상고 합격)김주열군의 눈에 최루탄이 박힌 변시체가 마산 앞바다에서 부상하였다. 이에 분노한 학생과 시민들이 궐기한 4.11 민주 항쟁 (마산 2차 의거)이 4.19의 기폭제가 되었다.

그리하여 반 이승만 정권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4월 19일 서울에서 시위하던 청년 학생들이 경무대(현 청와대)로 행진했는데 당시 이승만 대통령 경호실장이었던 곽영주 경감의 지시로 평화적인 시위 학생들을 향하여 무차별 발포하여 기백명의 학생이 죽어 갔고 수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당하였다.

이런 가운데 일반 시민들과 대학 교수들의 시위 가세에 4월 27일 드디어 이승만씨는 퇴임한 후 하와이로 망명, 그 불의한 정권은 종언을 고하고 새로운 정권 창출의 막을 열었다.

이렇듯, 4.19 혁명은 본시 우리 조상이 추구하였던 참 인간화와 자유, 평등사회를 실현시키려는 철학 사상과 일맥상통, 이를 행동화 실천하였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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