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월호 1주기를 즈음하여

2015-04-1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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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경<편집실 부국장 대우>

T.S.엘리엇은 그의 서사시 " 황무지" 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 노래했다. 그가 4월을 잔인한 달이라 한 것은 살아 있으나 죽은 것과 다름없는 의식을 가리킨다.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고 식별하는 능력, 순수하게 불타는 열정,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져버렸기 때문이다.

1년 전 우리는 세월호라는 거대한 선박의 침몰과 함께 잔인한 4월을 또다시 체험했다. 2014년 4월16일. 245명의 단원고 학생들과 50명의교사, 일반인 승객, 선원 등이 수장되는 모습을 우리는 생생한 생중계로 몇날며칠을 지켜보며 참담함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자식을 수장당한 부모도, 지켜보는 국민의 의식도 시간도 그대로 멈춰버렸다.


지금도 부모들은 왜 자식이 죽었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왜 정부가 그 수많은 인원과 장비를 동원하고서도 구조하지 못했는지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시원한 답변을 해주지 않는다. 진실은 여전히 물속에 잠겨있고 진상 규명을 위한 노력은 여전히 답보 상태다. 그리고 고통과 혼란 속에 일 년을 보냈다. 시간은 흘렀지만 그들은 지금도 일 년 전 자식을 잃는 순간에 멈춰 있다.

얼마 전 정부는 참사 1주기를 며칠 앞두고 느닷없이 배. 보상을 언급하며 돈 얘기를 꺼냈다. 마치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유가족을 위로하는 것처럼. 그리고 국민은 격분했다. 유가족에 내 세금이 나가는 것에……. 하지만 거기엔 국민의 세금은 한 푼도 포함되지 않았다. 학생들의 여행보험금, 국민성금, 그리고 학생 일인당 근로정년까지 일할 경우 수입(순수 근로 노동자 수입)을 정부가 압류한 유병언 일가의 돈으로 충당하는 것이다.

그들은 한 번도 입 밖으로 돈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는데 무엇을 근거로 보상금을 책정한단 말인가? 그들은 상중이다. 누가 상중인 사람에게 돈 얘기를 꺼내는가? 이건 도덕적으로 맞지 않고 유가족에 대한 모욕이다.

아직도 바닷속엔 실종자 9명이 있다. 그들의 가족은 시체라도 건진 유가족들을 부러워한다. 나도 유가족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도 매일 눈물로 호소한다. 내 가족을 뼛조각이라도 좋으니 건져달라고...

아침 드라마 좋아하고 연예인 얘기나 하던 엄마들이 거리로 나섰다. 그들은 지금 투사 아닌 투사가 되었다. 내 아들이, 딸이 억울하게 수장되는 흔적들이 하나 둘씩 나타날 때마다 그들은 울분을 토했고 지켜지지 못할 약속들이 남발될 때마다 절망 속에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진실을 밝혀달라고 스스로 나서 호소하기 시작했고, 더 이상 안타까운 죽음이 생기지 않게 안전대책을 수립해 달라고 외치고 다녔다.

하지만 1년이 다 돼가는 지금 그들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가고 정부는 특별조사위원회를 설립하였으나, 해수부가 주도된 시행령 안을 내놓고 그들의 아물지 않은 상처에 소금을 부었다.

얼마 전 한국일보는 여론조사를 통해 한국 국민의 77%가 세월호 인양에 찬성한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국민의 대다수가 철저한 진실규명을 원하고 아직 세월호는 끝나지 않는 진행형의 사건임을 입증한다. 또한 정부의 대응도 66.2%가 잘못하고 있다고 응답했으며 68.7%는 참사이후에도 안전 체감도가 별 차이가 없다고 대답했다.


국가란 무엇인가? 우리는 국가란 국민의 안전과 평화를 지키는 것으로 배웠고 그렇게 알고 가르치고 있다. 국민이 없으면 국가란 존재할 수 없고 국가가 없으면 국민 또한 안전할 수 없다. 그래서 무엇보다 국가와 국민간의 신뢰가 우선한다.

세월호와 국가가 그렇다. 세월호의 진상 규명은 특정 정파와 정부를 떠나서 국가와 국민간의 신뢰관계에 기초해 국가의 존재이유와 역할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이다. 생명보다 물질을 중시하는 이 사회, 이 국가에서 우리의 미래는 과연 무엇을 보고 배우게 될지? 안전 불감증과 불신의 골이 깊은 나라에 과연 희망찬 미래는 존재하는 지 묻고 싶다.

아직 저 차가운 바닷속에는 9명의 실종자 있다. 세월호를 온전히 인양해 진실을 밝히고 실종자를 가족 품에 돌려주는 것이 국가의 책임이자 의무이다. 또한 제2, 제3의 세월호가 나오지 않게 하기위해 작금의 사태를 직시하고 철저한 진상조사와 안전대책을 마련해 국가가 국민을 저버리지 않았음을 알게 해야 한다. 진실규명을 바라는 모든 이의 염원에 유효기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잔인한 4월이 아닌 생명의 봄비를 맞고 겨우내 언 땅에서 새싹을 틔우듯 희망을 전하는 4월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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