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허술한 수사가 부른 억울한 옥살이

2015-04-1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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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지하(사회1팀 기자)

제이 최씨는 남미 출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JFK 공항 입국 심사대에 여권을 내밀었지만, 그날따라 입국심사관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최씨의 손목엔 수갑이 채워졌다. 뉴욕시 구치소인 라이커스 아일랜드로 옮겨지면서 최씨는 자신이 수배 상태라는 사실을 듣게 됐다. 이후 뉴저지주 버겐카운티 구치소로 이송돼 인정신문을 받기까지 최씨는 9일간 수감 생활을 한 뒤 다음 법원 출석을 조건으로 풀려났다.

초등학생 아들, 남편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제니스 이씨는 출근길 주차를 마치고 뉴저지에 위치한 회사 건물로 막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사복을 입은 경찰들이 우르르 몰려와 다짜고짜 이씨를 붙들었다. 무슨 일이냐고 따져 물었지만 이들은 말이 없었다. 이후 겨우 들은 대답. 이씨 자신이 성매매 조직을 이끌던 중간 마담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8일간 구치소에 머물렀다.


소규모 주얼리 가게를 운영하고 있던 이지영씨 역시 뉴저지 집으로 찾아온 경찰에 이끌려 조사를 받고 구치소 수감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들을 하루 밤 사이 다 겪어봤다. 경찰이 이씨를 성매매 조직원으로 오해해서 벌어진 일종의 해프닝이었다. 3만 달러의 보석금까지 책정됐던 이씨가 세상으로 나온 건 3개월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이들 세 명의 한인은 이후 법원으로부터 최종 ‘무죄’ 판결을 받는다. 동명이인에 대한 수배와 체포가 이뤄졌다는 점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결국 아무 잘못도 없는 일반인들이 용의자와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짧게는 8일, 길게는 3개월씩이나 감금된 것이었다. 수사관들의 명백한 실수였다. 굳이 죄가 있다면 한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이름을 가졌다는 것뿐이다.

죄인으로 몰렸던 시간 동안 이들에겐 매 초, 매 분이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거기에다 갑자기 끌려간 자식을, 부인을, 엄마를 기다리는 가족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제이 최씨에 대한 수배 요청을 한 팰리세이즈팍 경찰, 제니스 이씨에 대한 수사 지휘를 한 뉴욕주 검찰청, 그리고 이지영 씨를 용의자로 확신한 뉴욕시경은 수사 과정에서 단순한 실수를 저질렀다고 항변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한 실수나 착오로 치부해버리기에는 무리가 있다. 한 사람의 인생, 더 나아가 전체 가족 구성원의 삶까지도 상처로 얼룩지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 계류 중인 이들의 ‘부당 체포’ 관련 소송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고, 중요하다. 적어도 허술한 조사를 벌인 수사당국이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심판하고, 다시는 이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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